베이징 소재 중앙정부 인민대회당

港媒:北京大会堂秘密扩建地下室 曾酷刑审问〝副主席〞

베이징 인민대회당 3단계 확장 공사가 8월 초에 시작됐다. 당년 ‘4인방’ 중의 한 사람이던 왕훙원(王洪文)은 체포된 후, 대회당 지하실에서 가혹한 고문을 당했다고 한다. 4인방이란 마오쩌둥의 가신 그룹이었다가 문화대혁명의 실패 책임을 지고 1976년 10월 6일 체포되어 숙청당한 4인이다. 장칭(江青, 마오쩌둥 부인, 중앙문혁소조 부조장, 중앙정치국 위원), 장춘차오(張春橋, 부총리,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야오원위안(姚文元, 중앙정치국 위원), 왕훙원(王洪文, 당 부주석,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등 이른바 4인이다.(GREG BAKER/AFP/Getty Images)

 

올해 8월 초, 베이징에 있는 중국 중앙정부인민대회당(이하 ‘대회당’)의 3단계 확장공사가 시작됐다. 480억 위안을 투자하여 3년간 진행되는 프로젝트다. 톈안먼 광장 서쪽에 위치한 베이징 대회당은 1959년에 건설됐고, 지상 4층, 지하 1층이다. 이곳은 중국공산당 고위층이 모임을 가지는 중요한 장소지만, 고문 취조를 하는 취조실도 설치되어 있다. 과거 1976년 10월 6일 왕훙원 국가 부주석이 ‘4인방’으로 분류되면서 체포되었을 때 이곳에서 끔찍한 고문을 당했다.

 

홍콩의 중국어 잡지에 따르면, 확장 공사 후 대회당의 규모는 길이 2.8km, 너비 1.5km가 될 것이며, 리히터 8급 지진을 막을 수 있고, 핵 방사능 복사를 막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공사 책임자는 왕융(王勇) 국무위원이다.

 

중공군 전직 장군 츄후이쭤(邱会作)가 쓴 ‘츄후이쭤 회고록’은 인민대회당 취조실과 왕훙원이 당한 고문에 대해 자세한 내용을 전하고 있다. 4인방 사건 당시 츄후이쭤는 16년 징역형을 받고 친청(秦城) 감옥에 수감됐다가 그곳으로 이송된 왕훙원을 만나게 됐다.

 

극한의 고문을 받은 후 왕훙원은 친청 감옥으로 이송되어 츄후이쭤를 만난 것이다. 왕의 건강이 너무 나쁜 것을 보고 츄후이쭤가 이유를 묻자, 왕훙원은 베이징 대회당 수감 중 받은 고문과 학대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츄후이쭤는 회고록에서 왕훙원이 베이징 대회당에 갇혀서 당한 시달림, 형틀 고문, 소음 고문, 강제 주사 등은 인간이 견뎌낼 한계를 넘어섰다고 썼다. 

 

수감 첫 날부터 나올 때 까지 그는 형구를 쓰고 있었으며, 그 형구는 움직일수록 안으로 조여드는 구조며, 잘못 움직이기라도 하면 바로 땅에 쓰러지게 되어 있었다. 땅에 쓰러지면 형구는 더욱 강하게 조여들 것이다.

 

취조실에 설치된 전향기(전기 소음 고문기)는 몇 십 분마다 한번 씩 울리게 설정되어 있었다. 그 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긁어대고 신경을 자극하여 사람을 극도의 흥분상태로 몰아간다고 한다.

 

심문과 고문은 담당자를 계속 교체하면서 쉴 틈 없이 진행됐다. 전향기 소리가 멈추고 고문이나 심문이 시작되면 왕훙원은 너무 졸려서 말도 잘 못했으며, 무언가 말하다가도 곧 잠들어버렸다. 그러자 그들은 왕훙원에게 여러 약물 주사를 놓았는데 이 주사를 맞으면 도무지 잠이 들지 않았다. 이 때문에 왕훙원은 더욱 초조하고 고통스러웠으며 왕훙원은 고통이라도 줄이고 싶어서 무슨 말이든 다 했다고 한다.

 

왕훙원은 아침에는 멀건 죽 한 그릇을 먹었고, 점심과 저녁은 작은 워터우를 하나씩 먹었다. 워터우란 옥수수나 수수 등 잡곡 가루를 원뿔 모양으로 빚어서 찐 음식이다. 그가 하루에 먹는 분량은 잡곡 200그램도 되지 않았다. 영양 부족으로 그는 전신이 나른하고 고개도 들기 힘들었다고 한다. 공개 재판일이 눈앞에 닥치자 겨우 배불리 먹을 수 있었지만, 그래도 품질이 너무 나빠 온몸의 붓기는 빠지지 않았다.

 

NTD 뉴스 보도 원루이(文瑞) / 책임편집 왕신위(王馨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