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의 총서기 등극 후 벌어진 류윈산의 반시진핑 행보는 외부에 알려진 것 보다 훨씬 많다. 중국이 언론 통제국이기 때문인 것은 당연하다.
2013년에 벌어진 중국 남방주말 사건은 중국의 민주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대단한 희소식이었다. 사건은 광둥성에서의 “사전검열 중단, 파업참가자 무처벌과 광둥성 선전부의 검열에 협조한 황찬(黃燦) 편집장을 사퇴”시킨다는 결정으로 막을 내렸다. 역으로 민주화를 진전시키려 활동했던 민주 운동가들은 탄압 체포당했으며 언론자유 여론은 당의 억압에 조용히 시들었다.
그 결과는 매우 실망스럽게 끝난 것처럼 보였지만, 시진핑 정권의 위로부터의 개혁과 개혁 교란에 대한 강경 돌파의 전략을 분명하게 드러내 주었다.
그 후에도, 류윈산은 장더장과 힘을 합쳐 끊임없이 시진핑의 행보에 교란을 주었다.
류윈산이 언론 선전을 활용해 시진핑 및 개혁진영을 공격한 방법은 매우 다채롭다.
인민일보가 격주간으로 발간하는 인민논단(人民論壇)은 올해 5월 26일 홈페이지 첫 면에서, “고급흑(高級黑)”에 대하여 상세히 다뤘다. 고급 흑이란 백색으로 위장한 흑색선전을 말한다. 예를 들면,
▲ 충성하는 찬가를 불렀지만, 과도한 절대화로 역효과를 내는 것(봉살捧殺)
▲ 질문이나 다른 의견에 대해 정부를 옹호하는 척 하면서 사납게 반응하는 것
▲ 정부의 방침을 칭송하면서 왜곡 해석하고 주제를 빗나가게 설명하는 것
▲ 사실을 왜곡해 여론의 역풍을 일으키는 것
▲ 사건이 벌어지면 언론을 통제하고 책임을 회피해 민심을 정부로부터 이탈시키는 것
기타 인민논단에서 다루지는 않았지만, ▲‘시진핑을 이상적 존재로 보도해 국민들을 꿈에 젖게 한 다음, 잘못된 보도라고 말하여 추락시킨 것’ 역시 고급흑에 속한다.
2013년 4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수행원 한 명만 데리고 베이징 도심에서 택시를 탔다는 보도가 나왔다.
홍콩의 친중국계 신문인 대공보는 18일 지난 3월 1일 베이징 도심에서 시 주석을 태웠다는 한 택시기사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궈리신(郭立新)이라는 이름의 택시기사는 당일 저녁 시 주석과 다른 일행 한 명을 택시에 태웠다면서 시 주석과 민생 문제 등 많은 대화를 나눴다고 전했다.
대공보는 이날 한 면을 털어 이 내용을 보도했다. 또 홈페이지에 따로 코너를 만들어 시 주석의 이동 경로를 그래픽으로 싣고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는 등 자사의 ‘특종’을 대대적으로 알렸다.
중국인들은 이날 보도 내용에 큰 관심을 보였다. 네티즌은 격식을 따지지 않은 시 주석의 파격적인 행보에 “역시 시 주석”이라며 환호했다. 이후 관영 신화통신도 자체 웨이보(중국판 트위터)를 통해 시 주석의 택시 탑승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18일 오후 5시 37분 신화통신은 사실 확인 결과 그 보도는 ‘허위 보도인 것으로 확인 됐다’고 정정했다. 이어 대공보도 홈페이지를 통해 해당 보도 내용이 거짓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대공보는 홈페이지에서 관련 뉴스를 모두 삭제했다.
그러나 대공보는 보도 경위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다.
2014년 6월 10일 장쩌민파는 “국무원 신문 판공실”을 통해 홍콩의 ‘일국양제(一國兩制)’를 무산시키는 정치 백서를 발표해 홍콩에 파문을 일으켰다. 시민 51만 명이 가두시위에 나섰고 80만 명이 반대 투표에 참여했다. 홍콩은 시위대와 진압경찰 그리고 시위를 반대하는 시위대로 계속 들끓었다. 장파는 홍콩에 ‘반(反)공산당’ 분위기를 격화시킨 다음 법치를 말하는 시진핑이 어쩔 수 없이 유혈진압을 선택하도록 유도하려 했다.
시진핑은 홍콩에 대해서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위로부터의 개혁의 속도를 더 높였다. 백서 발표 4일 후 14일 쩡칭훙의 보좌관이자 정협 부주석인 쑤룽(蘇營)을 면직시켰다. 그리고 25일 쑹린의 정협의원 자격을 박탈했다. 30일 홍콩 행정장관 렁춘잉을 4일 동안 정직시키면서, 쉬차이허우(徐才厚)의 낙마와 기소, 광저우시 서기 완칭량(萬慶良) 조사, 610판공실 주임 리둥성(李東生) 입안심사 등 장파 고관들을 줄줄이 처리했다.
결국 장파는 별다른 득 없이 손을 놓아야 했다. 오히려 쉬차이허우와 리둥성, 완칭량 같은 거물들만 낙마시키는 결과를 얻었을 뿐이다.
2015년 6월 중국 A주 폭락사태가 벌어지고 시진핑 정부는 증시 구제를 위해 국가기관을 동원해 증시구제에 나섰으나, 신화통신은 구제책은 효과가 없으며 오히려 시장 공황과 주가 폭락을 일으킨다는 주장으로 맞서, 시장 회복의 열기를 냉각시켰다.
실제로 6월 28일 중앙은행이 공포한 기준금리 및 지준율 인하는 대단한 조치로 보였지만, 증시는 오르지 않고 오히려 하락했다. 이어 증감위와 중앙은행은 각 기관에 주식 매수량을 할당했다. 그러나 역시 7월 6일 이후 3일간 증시는 연속 폭락해서 반 시진핑파의 의도가 승리하는 것으로 보였다.
시진핑 정부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다시금 초강경 정면 돌파의 수가 나와야하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다음에 살펴보겠다.
NTD 코리아 뉴미디어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