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방주말 사태와 류치바오 방한, 중국 정세 읽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12년 말 중국공산당 총서기에 임명돼 이듬해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현재의 국가주석직에 선출됐다. 그 사이 여러 가지 사건이 있었지만 중국 언론계에서는 ‘남방주말(南方週末) 사태’가 최대 사건으로 꼽힌다.

 

120만부 이상을 발행하는 중국 최대 주간지 남방주말은 광둥성 당위원회에서 발행하지만, 중국의 사회문제와 공직자 비리를 집중적으로 파헤쳐 중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언론으로 평가된다. 중국에 머무는 외신기자들이 가장 열심히 읽는 신문 중 하나로도 꼽힌다.

 

남방주말 사태란, 2013년 1월 초 남방주말 기자들이 당국의 검열에 반발해 파업했다가 2월 9일 업무에 복귀한 사건이다. 전말은 이러했다. 시진핑 주석은 2013년 신년사에서 입헌정치와 법치주의 실현 의지를 담은 ‘헌정몽(憲政夢)’을 제시했다. 남방주말은 이를 환영하며 입헌정치 실현을 촉구하는 신년사설 ‘중국몽, 헌정몽(中國夢,憲政夢)”을 게재하려 했다. 그러나 이 사설은 광둥성의 언론검열 책임자인 퉈전(庹震) 선전부장에 의해 개혁을 지지하는 내용이 삭제되고 당을 칭송하는 글로 변질됐다.

 

노골적인 언론검열이자 당 총서기의 신년사를 지지하는 내용이 일개 성(省) 당위원회 선전부장에 의해 편집된 하극상 사건이기도 했다.

 

분노한 남방주말 기자들이 1월 3일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를 통해 광둥성 선전부의 언론검열을 알렸고 4일에는 남방주말에서 강제 퇴직당한 전직 기자들이 퉈전 부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매주 평균 20건의 기사 검열이 있음을 폭로했다. 같은 날, 중국 개혁성향 월간지 염황춘추(炎黃春秋) 웹사이트가 신년사에서 시진핑 헌정몽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폐쇄됐다.

 

7일, 요구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자 남방주말 기자들은 파업을 강행했다. 이날 남방주말 사옥 앞에는 시민들이 언론자유를 지지하는 집회를 열었고, 중국 온라인에서는 남방주말 기자에 대한 지지선언이 이어졌다. 중국의 유명인사들도 웨이보를 통해 언론자유 지지선언을 시작했다.

 

국무원신문판공실, 중선부와 대립

이번 사태는 국무원신문판공실과 중앙선전부(이하 중선부)의 대립으로까지 번졌다. 국무원(행정부 격) 산하 신문판공실은 대내외 언론과 홍보를 맡은 정부기관이다. 중선부는 공산당 중앙위원회 직속기구로 공산당의 사상선전·교육, 언론감시를 담당한다.

 

당 기구인 중선부는 광둥성 선전부의 손을 들어줬다. 7일 관영언론 환구시보는 “남방주말이 당의 원칙을 따르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사설을 발표했는데 중선부 지시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이튿날 중국의 문화·선전 분야를 총괄하는 류윈산(劉雲山)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 각 지방 선전부와 언론사에 남방주말을 비판한 환구시보의 사설을 전재할 것을 지시했다.

 

반면 정부기관인 신문판공실은 남방주말의 편을 들었다. 환구시보에 해당사설을 삭제하도록 명령했다. 조속한 삭제를 위해 신문판공실 부주임이 환구시보를 직접 방문해 교섭에 나서기까지 했다.

 

이러한 정부기관과 당 기구의 대결은 싱겁게 끝났다. 중선부가 강하게 반발하자 신문판공실 측이 “잘못 생각했다”며 한 걸음 물러선 것. 주도권 다툼에서 이긴 중선부는 중국 각 지역 주요매체와 사이트에 환구시보의 사설을 전재하도록 해 결국 남방주말 사태의 파장을 키웠다.

 

이러한 남방주말 사태의 몸통은 류윈산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지목된다. 그는 2012년말 제18차 당대회를 통해 상무위원직에 오르면서 중선부 부장에서 물러났지만 오히려 문화·언론 분야에서의 권한은 더욱 막강해진 상태였다.

 

남방주말 사태를 촉발시킨 당사자 퉈전 광둥성 선전부장이 류윈산의 핵심측근이라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류윈산에 이어 중선부 부장에 오른 류치바오(劉奇葆)가 퉈전 부장을 지지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게다가 류윈산, 류치바오, 퉈전 세 사람은 모두 장쩌민 계파 인물로 분류된다.

 

그러나 남방주말 사태는 중선부의 생각대로 진행되지는 않았다. 유력 언론인 베이징 신경보(新京報)를 포함해 후난성 소상신보(瀟湘晨報), 완보(晩報), 신보(晨報) 등 매체에서 환구시보 사설 전재 지시를 거부했다.

 

이에 중선부는 강수를 뒀다. 반발하는 기자들의 블로그 계정을 폐쇄함으로써 기자들의 입을 막았고 그 사이 남방주말 기자들의 파업사태는 계속 됐다. 중선부는 또한 온라인에서 남방주말과 신경보를 지지하는 글과 중선부와 류윈산의 개입을 비난하는 글들을 삭제했다. 남방주말 지지집회를 가졌던 인권운동가 30명도 체포됐다.

 

중선부의 제압으로 언론자유 운동이 점차 힘을 잃어가고 있었지만, 시진핑 진영은 이에 대해 전혀 다른 각도에서 강수를 두어 상황을 급반전 시켰다.

 

1월 7일, 새로 부임한 중앙정법위서기 멍젠주(孟建柱)가 “올해 안으로 노동교양제도를 폐지한다”고 발표했다. 멍젠주는 시진핑 진영에 속한다. 중국문제 전문가인 스장산(石臧山)은 “노동교양제도는 중공 정법위의 핵심적 자금조달 수단”이라고 지적하며 “장쩌민 계파의 근간이자 약점을 건드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남방주말 사태를 마무리 짓기 위해 장쩌민 계파의 큰 약점 하나를 찌른 것이다.

 

또한, 1월 9일 시진핑의 선봉대장인 왕치산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는 후춘화 광둥성 서기를 내세워 “사전검열 중단, 파업참가자 무처벌과 광둥성 선전부의 검열에 협조한 황찬(黃燦) 편집장의 사퇴”를 약속하여 남방주말 기자들을 전원 업무로 복귀시켰다.

 

10일에는 신화통신이 보시라이(薄熙來)에 대한 사법처리 소식을 보도했다. 보시라이는 장쩌민 계파의 차기지도자가 될 인물이었으나 부정부패 혐의로 체포되면서 장쩌민 계파의 몰락을 가속화 시킨 인물이다. 장쩌민 계파로서는 위축될 수밖에 없는 소식이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남방주말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인 광둥성 선전부장 퉈전도 경질될 예정이었지만 그를 지지해온 류윈산 상무위원의 체면을 고려해 보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남방주말 사태를 통해 부패와 반부패의 대결 구도가 선명하게 드러나면서, 하나의 권력에 두 개의 목소리가 있음이 전 세계에 공개됐다.

 

시진핑 진영은 중하급 관리를 일일이 단속하는 대신, 부패 고관을 하나씩 솎아내는 전략을 취했고, 장쩌민파는 남아있는 기존세력을 가동하여 반부패를 저지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장파의 반격이 있을 때마다 시진핑 진영은 오히려 초강수를 두어 장파 고위 인물을 하나씩 솎아냈다.

 

현재 시진핑 정권은 언론, 선전, 외교 부문에 대한 위로부터의 개혁을 시작할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관측된다. 류윈산에 대한 공격의 포문이 열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 정부로부터 출국 제한 통보를 받은 고관과 그 친인척의 수는 1,570명이다. 얼마 전 한국을 방문했던 현임 중앙선전부 부장 류치바오(刘奇葆)는 출국제한 리스트 상위에 속하는 인물이다. 그는 중앙의 제한조치를 아랑곳 하지 않고 한국을 방문하여 여러 요인을 만나고 주한 중국대사 추궈훙도 만났다.

 

류치바오의 이런 행동은 여러 가지로 해석 가능하지만, 사실상의 자포자기라는 해석이 가장 유력하다. 류치바오는 쓰촨성 서기로 있으면서 많은 잘못과 부패를 저질렀다. 만일 시진핑 진영이 류윈산이 디디고 있는 디딤돌 하나를 빼려 한다면 가장 적격이 류치바오다. 그런 류치바오가 시진핑 중앙의 조치를 뭉개버리면서 한국을 방문했다. 자신의 힘을 과시한 것인가, 아니면 다른 도리가 없었기 때문일까?

 

지금 중국과의 관계를 긴밀히 하고자 하는 기업이나 정치인은 이러한 상황을 충분히 인식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NTD 코리아 뉴미디어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