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微视频】习近平想听知识份子说什么
[자오페이]
4월 19일, 시진핑은 인터넷 안전과 정보화 업무 좌담회에서 중국의 7억 네티즌 대다수는 일반 대중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관원들에게 네티즌에 대하여 “좀 더 포용과 인내를 가지고 건설적인 의견이 있으면 제때에 받아들이고 어려움에 처하면 제때에 도와주어야 한다.”, “온건하고 부드러운 말은 물론, 귀에 거슬리는 충언도 우리는 기꺼이 받아들여 진지하게 연구하고 반영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시진핑은 안후이(安徽)성에서 조사연구 기간 중인 4월 26일에도 한차례 좌담회를 개최했습니다. 초청받은 사람들 중에는 안후이와 전국각지에서 온 수많은 지식인들이 포함되었습니다. 시진핑은 관원들은 지식인에게 “좀 더 포용하고, 좀 더 관용하며, 흠을 잡지 말고 죄를 씌우지 말며, 공격하지 않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시진핑이 현재 진실한 말을 들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음이 이 두 차례 담회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는 네티즌과 지식인으로부터 진실한 말을 듣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중공 집권 하에서는 진실한 말을 하는 중국인이 치러야 하는 대가는 거대합니다. 때문에 진실한 말을 하는 사람은 정말로 보기 드뭅니다.
진실한 말을 한 중국인의 운명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우리는 먼저 먼 이야기부터 말하겠습니다. 1956년 4월 25일, 마오쩌둥은 백화제방, 백가쟁명(1956년 중국 공산당이 예술 발전・과학 진보와 사회주의 문화 번영의 촉진을 위해 실시한 정책)을 떠들었습니다. 한 달 후 중공 선전부장은 지식인들에게 당에 대해 의견을 제출하라고 했습니다. 한 무리 정직한 지식인들이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1957년, 증공은 태도를 돌변해 ‘반우파’ 운동을 일으켰고 그 지식인들은 큰 재앙을 입었습니다. 그 뒤부터 지식인은 영리해졌습니다. 중공이 다시 의견을 제출하라고 하면 그들은 “지도자는 모두 지쳐서 여위였습니다. 건강에 더 주의하십시오.”라고 말합니다.
1999년 4월 25일, 파룬궁 수련인 만 여 명이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습니다. 이 사건의 발단은 정법위 서기 뤄간(罗干)이 텐진(天津)에서 파룬궁 수련인을 체포했기 때문입니다. 파룬궁 수련인들은 정부를 믿고 청원 사무실에 가서 청원했습니다. 목적은 바로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평화적인 수련환경이 있기를 바랍니다,”라는 한마디 진실한 말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중공 장쩌민 정부는 어떻게 했나요? 10년 넘게 박해하면서 생체장기적출, 처벌, 가산 몰수를 하면서 사람을 죽음에로 몰아갔습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중국공산당이 집권하고 있는데 누가 감히 시진핑에게 진실한 말을 하겠습니까? 중국에서는 감히 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시진핑은 왜 이 시기에 여러분의 진신한 말을 들으려고 할까요? 그는 도대체 무슨 말을 들으려고 할까요? 최후의 대형 공산당인 중공의 중국 통치는 ‘서산에 지는 해’의 격입니다. 도덕위기, 사회위기, 환경위기 심지어 경제위기는 일촉즉발이여서 이제 곧 끝날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집권자 시진핑은 바늘방석에 앉은 것 같을 텐데, 그의 다음 행보는 여러분의 진실한 말을 듣는 것입니다.
우리는 중국에서 감히 말하지 못하는 말도 해외에서는 말합니다. 중국은 위기에 직면했는데, 격동하는 경제 분야에 대해 취한 개혁은 아무 효과가 없습니다. 시진핑과 리커창이 여러 가지를 시도했지만 결과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정치 측면의 처방도 결과가 큰 것은 아닙니다. 당내 민주부류의 소규모 싸움도 별 효과를 나타내지 못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서민은 ‘공산당’을 철저히 불신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유일한 출로는 바로 공산당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 첫 번째 발걸음은 중국공산당 내무의 ‘혈채파’의 제거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렇게 해야 만, 사람들이 시진핑의 결심을 알 수 있고 마음을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다음에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고 쑨중산(孙中山) 선생의 ‘군정(军政), 훈정(训政), 헌정(宪政)’의 민주 3부곡에 따라 중국을 바른길로 이끌어 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