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微视频】生死难料 江泽民三次缺席送花圈圈
[자오페이]
중공 전 총서기 장쩌민은 당내에서 유명한 화환 보내기 전문가입니다. 누가 사망하면 그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꼭 화환을 보냅니다. 실제로는 자신의 권력 상실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이 두 달 동안 중공은 세 차례 추도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장쩌민이 화환을 보내지 않아 국제사회는 장쩌민에게 사고가 났음을 짐작했습니다.
3월 27일, 중공의 ‘젠-10 전투기’ 총설계사 쑹원충(宋文骢) 영결식에 시진핑, 후진타오 등 13명의 전현직 상무위원들이 참석해 애도를 표했지만 장쩌민의 이름은 자취도 없었습니다. 4월 16일, 전 후베이(湖北) 성위서기 관광푸(关广富) 사망 때도 시진핑, 후진타오, 주룽지 등 16명의 신구 상무위원들이 애도의 뜻을 표하였지만 장쩌민은 또 결석했습니다. 4월 18일, 전 공안부장 타오쓰쥐(陶驷驹)영결식에서 시진핑과 후진타오 등 10명의 신구 상무위원들이 화환을 보냈지만 장쩌민은 또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이로써 추측컨대 지금 장쩌민은 공식석상에 얼굴을 내밀 수 없는 상태로서 사고가 난 것으로 보입니다.
장쩌민의 ‘사고 발생’은 두 가지 상황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정치적 사고이고 다른 하나는 신체적 사고입니다. 먼저 장쩌민의 정치적 사고에 대해 가장 크게 난 소문을 보죠. 상하이 변호사 정언충(郑恩宠)은 장쩌민의 부자가 가택 연금 당했다는 소문이 자자하다고 말하면서, 장쩌민이 현재 얼굴조차 내밀지 못한다는 것은 체포될 날이 멀지 않은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럼 장쩌민의 신체적 사고 가능성을 보죠. 2011년 7월 6일, 홍콩 아시아 TV는 장쩌민이 죽었다고 말한바 있습니다. 아시아 TV의 실수는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 해 7월 1일, 중국공산당 90년 경축일에 장쩌민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는데, 이에 앞선 6월, 장쩌민은 심근경색이 심하고 간암도 있음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혹시 현재 그가 화환을 보내지 않는 것은 그가 화환을 받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가능성이 큰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해석하든, 장쩌민이 이번에 3차례나 얼굴을 내밀지 않은 것은 장파 졸개들이 ‘이제 나무가 넘어지고 원숭이가 흩어지는 것이 아닌가’ 안절부절하게 만들었습니다. 장파 고위급은 이점을 의식하여 어차피 장쩌민이 공개 석상에 얼굴을 드러내지 못하는 이상 다른 수법을 쓰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화변뉴스(花边新闻)에 장쩌민의 기사를 올렸고 3월 28일, 인터넷 뉴스에는 장쩌민이 ‘세계유명가곡45수’에 서문을 썼다고 소문을 냈습니다. 4월, 해외신문은 장쩌민이 쑤저우(苏州)를 유람했다고 말했지만 여러분은 이때 장쩌민이 찍었다는 사진이 사실은 옛날 사진이고 편집까지 거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장파들의 조작임이 뻔합니다. 만약 장쩌민에게 아직 자유가 있다면 세 번의 장례식에 적어도 한번은 화환을 보냈을 것입니다.
사실, 중국 고위층이 장쩌민을 처리하는 방식은 3가지가 있습니다. 상책은 공개재판, 중책은 부패를 이용한 처리, 하책은 괴롭게 죽이는 것입니다. 장쩌민이 이미 90세가 되었고 그의 신체 상황을 고려하여 죽을 때까지 가택 연금하는 것입니다.
중책과 하책의 근본은 모두 중국공산당을 지키려는 것이지만, 사실은 중공 고위층에게 그다지 유리하지 않습니다. 중공이 무너지는 것은 이미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그럼 살아있는 사람 중에서 누가 중공죄악의 책임을 구체적으로 져야 할까요? 현재로서는 당연히 장쩌민입니다. 그는 부패치국을 일으켰고 파룬궁을 박해하여 무고한 인명을 수없이 죽였습니다. 만약 구체적인 책임자인 장쩌민이 처벌 받지 않으면 남은 사람들이 중국공산당의 죄악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 도리는 아주 간단합니다. 나치가 전쟁에서 패한 후 전범은 모두 나치의 하수인으로 규정되었습니다.
상책이야말로 중공 고위층의 유일한 탈출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파룬궁 수련인은 이미 장쩌민을 최고법원에 고소했고 장쩌민의 반인류죄 공개재판을 통해 중공의 죄악을 판결했습니다. 중공 고위층도 이렇게 해야만 천명에 순종하고 인심에 부응하여 미래 중국의 인권, 헌법과 정치체제(政体)를 수립할 수 있고 미래의 공신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