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오페이] 중공, 때이른 지방인사이동과 중앙 후계자 부족

微视频中共地方人事异动 接班人断层

 

[자오페이]

중공 19대는 관례에 따라 2017년에 열립니다. 올해 3월부터 중공의 각 지방 고위직에 인사이동이 갑자기 시작됐습니다. 대체적인 상황을 정리하면 그것은 바로 장파는 매우 불안하고 다른 계파는 좋은 자리를 선점하려 움직인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우융캉, 링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장쑤(江苏)성 서기 뤄즈쥔(罗志军)은 형세가 매우 불리하다고 판단하여 스스로 관직에서 물러남으로써 극히 가벼운 처벌만 받았습니다. 쩡칭훙과 관계가 밀접한 장시(江西)성 서기 창웨이(强卫)는 처지가 자꾸 힘들어져갑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다른 계파의 인물들은 모두 상황이 괜찮습니다. 왕치산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린둬(林铎)는 간쑤(甘肃)성에 파견되어 성장(省长)대리 겸 부서기를 담당하고 내년에 퇴직할 왕산윈(王三运) 서기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미 간쑤성 1인자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시진핑의 옛 부하도 여러 차례 중용되었습니다. 중앙조직부 상무 부부장 천시(陈希)는 후허핑(胡和平)을 산시(陕西)성 성장 대리로 임명했습니다.

 

우리는 2012년에 후진타오의 공청단파가 19대 상무위원의 주요 후보가 될 것이라 분석한 바 있습니다. 따라서 왕양(汪洋), 류치바오(刘奇葆), 후춘화(胡春华), 리위안차오(李源潮) 등이 모두 희망이 있습니다. 장쩌민 쪽은 비참하다는 말로 형용할 수 있습니다. 한정(韩正)을 베이징에 보내 2016년에 부총리를 만들려던 시도는 작년(2015) 말 무산되었습니다. 보시라이 사건, 저우융캉 사건, 궈보슝 사건, 쉬차이허우 사건은 당정군(党政军) 전체에서 장쩌민파를 엉망진창으로 부수어 버렸습니다.

 

19대를 앞두고 중국 정국(政局)이 이렇게 치열하게 힘겨루기를 하고 있지만, 세심한 매체들은 중국공산당에 후계 자격자가 너무 적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6세대 후계자가 될 수 있는 성부급 관원은 겨우 4명뿐입니다. 1963년생, 충칭(重庆)시위서기 순정차이(孙政才), 1963년생, 광둥(广东)성위서기 후춘화. 1960년생, 구이저우(贵州) 성위서기 천민얼(陈敏尔), 1962년생, 산시(陕西)성장대리 후허핑(胡和平)입니다.

 

그보다 뒤에 태어난 65년 세대는 더욱 불안정합니다. 1967년생인 헤이룽장(黑龙江) 성장 루하오(陆昊)만이 ‘65 이후18대 중앙위원 겸 성부급 관원입니다. ‘65 이후의 부성부급(副省部级) 관원의 총수는 20명도 안됩니다.

이런 현상의 이유를 따지자면 바로 천멸(天灭)중공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중공해체는 하늘의 뜻이자 자연의 법칙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중공의 정치 발전추세를 분석할 때 경제 음모론을 말하면서 증시하락과 경기 둔화를 듭니다. 우리는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다는 것을 말하겠습니다. 중국경제의 어려움은 일종 결과인데 그 원인은 중공 해체라는 하늘의 뜻이며 장쩌민의 부패치국의 악영향 때문인 것입니다.

 

이런 경제적 난관은 갈수록 감추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늘의 중국 역사는 바로 28대 전후의 소련역사를 재현하고 있습니다. 이런 차가운 현실은 집권자가 중국의 전도와 자신의 미래를 사고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중국 서민들의 끊임없는 중국공산당 탈퇴도 베이징 고위층의 분열을 조성해 중공을 두 개 파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누구도 가로막을 수 없습니다, 천명에 순종하고 인심에 응하는 것이야말로 정도(正道)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