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궈훙(邱國洪) 주한 중국 대사는 23일 한-미의 사드(THADD,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 논의와 관련, “이 문제로 중국의 안보 이익을 훼손한다면, 한중 관계는 어쩔 수 없이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면서 “한중 관계를 오늘처럼 발전시켜왔던 노력들이 겨우 한가지 일 때문에 순식간에 파괴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더불어민주당의 김종인 대표를 만나 전했던 이런 원색적 발언에 한국의 여론이 술렁거림을 넘어서 분노하고 있다.
여론이 추대사의 발언을 문제 삼는 이유는 많다. 우선 중국 언론은 그동안 사드의 한반도 배치에 관련해 한국에 대해 이번처럼 폭언을 일삼아 왔다.
중국군 기관지 해방군보는 지난 18일 “중국 공군의 폭격편대가 한국의 사드 기지를 1시간이면 파괴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20대의 폭격기가 출동해 크루즈 미사일 수백 발을 발사하면 순식간에 끝난다는 것이다. 이는 명백한 협박 발언이다.
또한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도 지난 16일 사설에서 한국에 대해 ‘바둑판 위의 돌’이라 표현하면서 ‘베이징의 최저 기준선을 건드리는 자는 결연히 그 대가를 치르도록 할 것’이라 외쳤다. 이는 협박에 비하까지 섞은 발언이었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도 지난 12일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항장무검 의재패공(項莊舞劍 意在沛公)’이라는 표현으로 한국을 미국의 휘하장수처럼 표현해 ‘외교적 결례’ 논란을 빚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중국 언론 외교부문의 이런 입장이 시진핑 정부의 공식적 입장인가 하는 것이다. 한국은 현재 어느 나라 못지않게 중국과 친밀한 외교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 한국에 협박과 비하의 발언으로 적개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과연 중앙 정부의 ‘정상적’ 입장 표현으로 볼 수 있을까?
둘째, 추 대사는 야당 임시 대표에게 그런 발언을 했을 뿐, 여당 대표는 물론이고 한국 정부의 대표성을 지닌 인물을 만나지는 않았다. 중국 중앙의 입장을 대변한다면 그는 반드시 여당과 정부 요인을 만나야 했다. 이는 주한 중국 외교관들이 사드 및 북한문제와 관련해 한국 정부를 직접 상대할 자격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이기도 한다.
셋째, 주한 중국대사관이 야당을 만난 것은 한국의 여론을 분열시켜 사드 배치에 대한 저항력을 강화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한국 정부에 공식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면, 비공식적으로 여론전을 전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국 18대 시진핑 정부가 들어서면서 과거 20년간 중국 각계에 뿌리박은 부패세력을 청산하는 반부패 드라이브가 계속되고 있다. 저우융캉을 비롯해 106명의 거물들이 차례로 낙마했다. 그 면모를 보면 모두가 성부급 고관과 직할시의 고관들이다. 시진핑의 반부패는 위에서 아래로, 안에서 밖으로, 공공기관에서 언론문화 부문으로 확산되어가고 있다.
이는 중국의 중하급 관리, 외교 부문, 언론 부문은 아직도 반부패의 칼날을 충분히 받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이들의 이해관계가 중국 중앙과 일치하지 않을 것임은 명백하다. 이들은 많은 기득권을 포기하면서 중앙에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면 반드시 중앙에 저항할 수밖에 없다.
예부터 중국의 장쩌민 일파는 북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1989년 톈안먼 학살을 계기로 당 총서기에 오른 장쩌민은 이듬해 3월 첫 해외 방문지로 북한을 택했다. 당시 수행단에 포함됐던 장더장은 김일성 대학 경제학과 출신으로서 장쩌민에게 많은 북한 관련 정보를 주었다. 이때부터 장쩌민은 장더장을 중용해 1990년 10월 그를 연변 서기로 임명해 대북 창구 역할을 맡겼다.
북한은 작년 10월 10일 노동당 창당 열병식 당시, 리위안차오(李源潮) 중국 부주석이 이끄는 중국 사절단의 방북은 거절한 반면, 중국 언론의 지배자이자 장파의 상무위원인 류윈산과 장쩌민은 초청했다. 류윈산은 북한 열병식의 TV 중계방송을 뒤에서 총지휘했으며 베이징 열병식을 중계한 중국 CCTV의 주요 기술자들을 사전에 파견해서 북한을 도왔다. 최근 취소됐던 북한 모란봉 악단의 베이징 공연 역시 류윈산이 북한 방문 당시 협의해 내린 결정으로 알려졌다.
장쩌민의 책사 쩡칭훙 역시 김정일과 절친한 사이였다. 쩡칭훙은 2001년 3월 장쩌민의 방북 당시 선발대로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로부터 뜨거운 환영을 받았으며, 북한은 이후 쩡칭훙과 김정일이 함께 그려진 기념우표를 발행하기도 했다.
보시라이와 저우융캉은 쿠데타가 실패할 경우 도피처로 북한을 고려했던 것으로 언론에 알려졌다.
시진핑의 전임자인 후진타오는 시진핑 정권의 탄생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그리고 북한의 핵실험(2006년 10월)은 장파의 후진타오 암살 작전이 진행되던 시기였다. 2차 핵실험(2009년 5월) 역시 후진타오 암살모의와 시기적으로 겹쳤다. 북한의 3차 핵실험(2013년 2월)은 갓 출범한 시진핑 정부가 장쩌민파에 대한 공세를 본격화한 시기였다.
이쯤 되면 중국 언론과 외교 부문이 왜 북한을 감싸고 있으며, 왜 시진핑으로부터 신임을 얻지 못하고 있는가가 명백해 진다. 중국 외교관들의 대다수는 현재 앞날이 불투명하다. 장파라는 태생적 불리함 외에도 무수한 부패의 약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중국 중앙에 저항하면서 기득권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지푸라기라도 잡아야하는 입장이다.
그래서 장파 출신 외교관들의 몸부림은 치열하다. 자신들의 활동에 중국 중앙의 후원을 얻기 힘들기에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유력한 방법은 국제사회에서의 여론전이다. 북한을 직간접으로 지지하며, 시진핑 정부를 진퇴양난에 빠지게 만드는 여론을 조성하는데 전력을 기울인다. 홍콩의 우산운동을 폭력운동으로 선동하여 시진핑 정권이 무력을 동원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려 했던 것도 그 일환이며(물론 실패로 돌아갔다.) 한국에 협박과 비하 발언을 해서 한중 외교에 곤란을 조성하고 한국 여론을 분열시켜 북한을 도와주려는 노력은 어찌 보면 가련하다.
NTD 코리아 뉴미디어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