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세계각지의 한파 소식부터 보겠습니다.
미국 동부의 많은 지역에는 폭풍설이 불었습니다. 미국 동부 12개주와 콜롬비아 특구에서 총 43명이 사망했습니다. 타이완은 1월 25일까지 ‘제왕급 한파’가 강타해 적어도 85명이 사망했고 앞으로 사망자수는 더 많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은 겨울 사상 최강 저기압을 맞아25일까지 5명이 사망하고 200여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중국뉴스는 ‘패왕급’ 한파가 지속적으로 중국 각지에서 ‘위세를 부려’ 폭설이 내렸고 23일 많은 지역이 사상 최저기온 접근 내지는 돌파 상태라고 전했습니다. 당신은 무엇이 모자란다는 느낌이 안 듭니까? 사망자와 부상자 숫자는 왜 없을까요? 중앙 선전부는 그런 정보는 없이, 설연휴 운수가 어려움을 겪었지만 사회는 온정이 넘친다는 두 구절을 추가했을 뿐입니다.
한 네티즌은 중앙TV 뉴스 두 가지를 비웃었습니다. 첫 뉴스는 수도 베이징에 상서롭게도 60cm의 큰 눈이 내려 공기 정화와 살충, 살균 효과가 있었고 제설 작업은 원활하여 교통에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 뉴스는 미국 워싱턴에 갑자기 59cm 폭설이 내려 수만 편의 항공편이 마비되고 교통체증으로 많은 사람들이 오도가도 못하고 있으며, 교통사고도 연이어 일어나 긴급상황에 들어갔다고 말했습니다. 네티즌은 두 뉴스를 말하면서 “눈 1cm가 모자라서 미국시민은 사회주의 ‘우월성’을 향수하지 못해 얼마나 비참한가.”고 말했습니다. 중앙TV의 재난 보도는 이정도 수준입니다.
중국공산당은 국민 기만이 기본입니다. 중국도 이번의 한파로 사망하거나 부상당한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베이징만 해도 여전히 많은 민원인들이 거리에서 노숙하는데 그중 많은 사람들이 옷차림이 얇고 식사도 제대로 못합니다. 해외언론의 인터뷰를 받은 민원인들은 해마다 베이징 거리에서 사람이 죽어나가지만 당국은 전혀 발표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중국의 그런 면에 대해 이미 무감각해진 사람들도 아주 많을 것입니다. 현대의 중국과 옛 중국을 비교해 보면 현대 중공문화가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당나라 시대 대시인 두보(杜甫)는 ‘봉선현으로 가며 읊은 시’에서 “부잣집에 술과 고기가 다 썩어서 냄새가 나는데 길에는 얼어 죽은 시체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두보의 ‘가을바람에 초가이엉 날렸네.’에는 “어찌하면 천만 간 커다란 집을 지어, 가난한 선비들과 기쁜 얼굴로 풍우에도 문제없이 편안함을 누릴까”라는 하나의 명구가 있습니다. 이런 명구가 후세에 전해진 것은 그 속에 담겨있는 두보의 고귀함이 높게 평가받았기 때문입니다.
중국 전통의 문화에서 요구하는 지식인의 덕목은 범중엄(范仲淹),범문정공(范文正公)의 한마디 말로 개괄됩니다. “천하의 사람들보다 먼저 걱정하고, 천하의 사람들보다 나중에 기뻐한다.” 즉 천하의 백성을 품어야 지식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국공산당의 관리와 통제를 받는 언론인이 이렇게 할 수 있을까요? 그러지 못합니다. 그들은 반드시 당의 지시에 따라 나쁜 소식은 빼고 좋은 소식만 알립니다. 만약 재난 뉴스를 보도한다면 지도자가 어떻게 구조했다는 것만 알립니다.
2015년 6월, ‘둥방즈성(东方之星)’ 배사고로 422명이 사망했지만 바로 그 이틀 동안 후베이(湖北)성은 300여개의 직장과 개인을 공개 표창했는데 심지어 신화사와 장례식장도 표창 받았습니다. 그러자 여론이 분분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반성은 커녕 공치사로 바빴으니까요. 홍콩언론은 심지어 ‘돼지고기 분배하기’라는 말로 그 파렴치함을 표현했습니다.
우리의 선조 두보 어르신과 비교하면 중공이 60여년 동한 만들어낸 ‘당문화’는 변이된 문화임을 똑똑히 알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중국의 지식인도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공산당 때문에 아무리 어쩔 수 없다 해도, 우리는 천하의 사람을 위해야 합니다. 그들이 스스로 중공의 당단대(党团队)조직에서 탈퇴하도록 구원의 말과 손길을 건네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