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능력·치유능력 기공대사, 중공 고위층 밀월관계

 

초능력·치유능력 기공대사와 중공 고위층은 밀월관계다

초능력과 치유능력으로 이름을 날렸던 중국의 기공대사가 살인 및 납치혐의로 체포되면서 중국 고위층의 은밀한 사생활이 드러나고 있다.

장시(江西)성 핑샹(萍鄉)시 공안은 기공치료사 왕린(王林·63) 등 4명을 살인 및 납치 혐의로 체포해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왕씨는 부동산 소유권 문제로 자신을 고소한 사업가 쩌우융(鄒勇)을 납치·살해해 호수에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왕씨는 치유능력으로 병을 고쳐주고, 초능력으로 운수대통하게 해준다는 소문이 나면서 중국 고위층과 유명인들이 친분을 쌓고 싶어 몸달아 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런 만큼 정계·재계·연예계에서 강력한 인맥을 과시했다. 중국 최고검찰원 검찰장 자왕춘, 전 외교부장 첸치선, 전 위생부장 겸 중국 적십자 총재 천민장, 전 철도부장 류즈쥔(부패혐의로 사형선고 후 집행유예), 전 중공중앙 정치국상무위원 자칭린 등 정계인물과 재계에서 마윈(馬雲·51) 알리바바 회장, 연예계에서 청룽(成龍·성룡·61) 등이 대표적이다.

장쩌민파와도 가까웠다. 왕씨는 부정부패 혐의로 체포된 구쥔산 전 인민해방군 부부장, 저우융캉 정법위 서기, 궈버슝 중앙군사위 부주석, 보시라이 전 충칭시 서기 등이 운세나 풍수를 봐주며 장쩌민의 총애를 얻어 ‘장쩌민파의 국사’(國師)로 불리기도 했다.

그렇다면 왕씨는 어떤 인물일까? 왕씨는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7세 때 출가해 쓰촨(四川)성 어메이산(峨眉山·아미산)의 한 도사 밑에서 수련했다”며 소개해왔으나, 현지 언론이 추적한 내용은 그와 다르다.

동방조보(東方早報) 2013년 특집기사에서 따르면, 왕씨는 장시성 핑샹시 루시(蘆溪)현의 한 은세공기술자 집안에서 1남1녀의 둘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왕씨는 민간의료를 좀 알았던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어린시절 공부를 싫어해 거리를 자주 떠돌았으며, 어디선가 얻어온 사탕이나 심지어 담배를 보여주며 친구들에게 자랑하기도 했다.

문화대혁명 당시 ‘지식청년’으로 농촌에 보내진 왕씨는 한 여성과 부적절한 관계로 물의를 빚었으며, 이후 사기죄로 후청(洪城) 감옥에 10년간 갇혔다. 수감기간 왕씨는 주문을 외운 뒤 탁자 아래에서 먹을 것을 꺼내는 ‘신통력’으로 수감자와 교도관의 관심을 끌었다.

그러다가 1987년 왕씨의 ‘기적’을 전해들은 장시성 난창(南昌)시 기공과학연구소에서 10명의 연구진과 검증단을 감옥에 파견해 여러 가지 실험을 했는데, 여기에서 왕린은 빈 컵에서 술을 따르는 초능력을 선보여 ‘특별인재’로 가석방됐다.

난창시에서는 왕씨에게 주택을 제공하고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을 허용했는데, 이후 왕씨를 만나보고 간 공직자들이 승진하면서 왕씨도 ‘기공대사’로 유명해진다. 이와 관련 한 현지 언론은 왕씨가 권력층과 유착을 통해 공직 브로커 활동을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왕씨는 무면허 의료시술, 사기, 뇌물수수 등 혐의를 피해 홍콩으로 이주해 생활해왔으며, 지난 16일 체포당시에는 광둥성 선전에 머물고 있었다.

무신론 중공 고위층, 귀신숭배 열중

왕씨 체포와 함께 최근 줄줄이 낙마한 장쩌민파 인물들의 ‘귀신숭배’도 화제가 됐다. 구쥔산 전 인민해방군 부부장은 자주 무속인을 집으로 초청해 귀빈대접을 하며 점을 봤다. 풍수사의 조언에 따라 고향의 선친 묘소주변에 대규모 호화 공원묘지를 건설했으며, ‘설이 지나면 바로 복직한다’는 점쟁이의 말을 철썩 같이 믿기도 했다. 부패혐의로 ‘쌍규(雙規·당원을 구금상태에서 조사)’ 처분을 받자 바지주머니에 복숭아(桃·도) 나무 부적을 넣고 다녔는데, 달아날 도(逃)와 발음이 같다는 이유였다.

공안조직인 중앙정치법률위원회를 이끌던 저우융캉도 병치료와 점술에 능한 인물을 곁에 두고 항상 조언을 구했으며 주변에 “가장 신임하는 사람”으로 소개했다. 또 출세를 위해 풍수에 따라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여 조상묘소를 개축하기도 했다.

보시라이 전 충칭시 서기도 풍수에 따라 자신의 ‘벼슬길과 돈줄을 가로막는’ 다롄(大連)시의 소련군 기념탑을 이전하고 재복을 부르는 기둥을 건설했으며, 또 다롄 퉁뉴링(童牛嶺)구의 명소인 금마빌딩을 자신의 띠와 충돌한다는 이유로 폭파·철거했다.

장쩌민 전 중공 총서기는 풍수에 대한 집착이 특별히 더 심했다. 집권 직후부터 천안문 깃대를 높이고 베이징 남쪽 담수호에 물을 대는 토목공사를 벌였는데, 풍수를 통해 권력을 안정시키려는 이유였다. 또 장쩌민은 1998년 양쯔강 홍수 때 수문개방을 금지시켜 결국 5천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시켰는데 “용맥을 보호하라”는 한 역학자의 말 때문이었다.

중국 네티즌은 “신도 부처도 믿지 않는 중국공산당이 귀신을 믿는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풍수, 점치기로 액을 면하기에만 급급할 게 아니라 성실하고 선량한 마음씨를 가져야 하늘로부터 복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NTD뉴스 탕디(唐迪)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