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ntdtv.co.kr 2015-06-12 04:48 AM]
저우융캉 살게 돼 – 장쩌민, 쩡칭훙 위기에 직면할 듯(인터넷 사진)
한때는 사형 판결을 받으리라고 여겼던 저우융캉이 6월 11일 종신형 판결을 받았다. 외신은 저우융캉과 그 후원자 장쩌민, 쩡칭훙은 정변을 발동하여 시진핑을 끌어내리려 시도 했으며, 쩡칭훙은 또 ‘태상황’이 될 계획이 있었다고 보도해 왔다. 그런데 시, 왕은 뜻밖에도 저우융캉을 살려 주었다. 저우융캉에게 사형이 집행되면 증인이 없어지는 효과가 있었지만, 이번 판결로 그럴 가능성은 사라졌다. 장과 쩡은 체포될 위기를 전혀 벗어나지 못했다.
6월 11일, 텐진시 제1 중급 법원은 저우융캉에 대해 수뢰, 직권남용, 고의적인 국가비밀 누설 죄로 1심 판결에서 종신형과 종신정치권리 박탈, 개인재산몰수를 판결했다. 저우융캉은 판결에 복종하고 상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전 중공 총리 원자바오의 친구인 홍콩의 우캉민(吳康民)의 발언에 따르면, 저우융캉의 배후에 있는 두 명의 후원자로 인해 저우융캉 재판은 매우 복잡하고 힘들었다.
우캉민이 장쩌민과 쩡칭훙의 이름을 직접 가리키지는 않았지만, 국제사회는 우캉민이 그 두명을 가리킨다고 해석했다. 일부 해석에 의하면, 저우융캉이 종신형만 받은 것으로 인해 장, 쩡 두 사람은 자신을 보호하기 어려운 곤경에 빠졌다.
외신에 따르면, 보, 저우의 정변 계획은 장쩌민이 주도하고 쩡칭훙이 주모했으며, 저우융캉은 정법위라는 제2권력을 발동하여 중앙을 책임지기로 했었다. 2012년 2월 6일, 왕리쥔이 청두 미국 영사관으로 도주한 후 미 영사관에 전달한 자료 중에 보시라이와 저우융캉이 합동 쿠데타를 일으켜 ‘중공 18대’ 후 시진핑을 하야시키기로 정한 계획이 들어 있었다.
2015년 1월, ‘봉황주간’은 저우융캉과 보시라이가 충칭에 있을 때 가졌던 밀담을 폭로했다. 밀담 내용은 ‘문화혁명’을 부활시켜서 ‘한바탕 크게 해보자’는 내용이었다.
2014년 7월, 해외의 한 중국어 언론이 밝힌데 따르면, 저우융캉은 체포되어 조사당하면서, 자신과 쩡칭훙이 모종의 비밀 명부를 작성했었음을 진술했다. 작성시점은 2011년 7월 장쩌민이 병세가 위중해 베이징 301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던 바로 그 기간이었다. 저우융캉과 쩡칭훙은 비밀리에 만나 장쩌민이 사망하면 즉시 보시라이를 베이징에 불러오기로 했다. 쩡칭훙은 보시라이에게 시진핑을 통제할 계책을 꾸미게 하고 자신은 ‘태상황’이 되기로 계획을 잡았다.
장과 쩡이 정변을 계획한 가장 깊은 이유는 자신들처럼 파룬궁에 피의 빚을 진 보시라이가 정권을 쥐고 파룬궁 박해 정책을 유지해야 자신들이 살아있는 동안 청산당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말, 홍콩 잡지 ‘전초(前哨)’는, 암 말기인 쉬차이허우가 달갑게 죄를 시인하는 대가로 ‘네 가지 요구’를 제시했다고 전했다. 중기위가 재빨리 쉬가 시인한 죄상을 저우융캉에게 추궁하자 저우융캉은 자신의 죄를 시인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저우융캉의 진술에는 쩡칭훙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었다.
홍콩 ‘태양보’는 원래 저우융캉을 가장 보호하고 싶어 하고 가장 보호할 수 있는 사람은 장쩌민과 쩡칭훙이었지만, 그들은 이미 ‘평민’이 되었기에 저우융캉을 보호하려면 반드시 지금의 제5대 지도자 집단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제5대 지도자들은 장과 쩡의 요청에 불응할 가능성이 십중팔구였다. 저우 안건은 ‘증거가 확실하고’ 죄행이 엄중하여 보호하기가 너무 어려운 데다가 장쩌민, 쩡칭훙은 현재 자신들조차 보호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저우융캉조차 직접 자기 입으로 ‘자신은 그들에게 기대를 걸지 않는다.’고 발언했다. 저우융캉의 판결이 가벼운 것은 결코 장과 쩡의 입김 때문이 아닌 것이다.
NTD 뉴스 탕밍(唐明) 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