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더장의 앞날 (4) 위기 중중 (한)

[www.ntdtv.co.kr 2015-06-11]

 

현재 장더장은 장파 상무위원의 수석이자 전체 상무위원 서열 3위라고 한다. 하지만 그의 실력은 쩡칭훙에 비해 한참 서툴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장더장의 세력은 광둥성, 지린성, 저장성에 몰려있었다. 지금 그의 세력은 어떤 상태일까?

 

 

우선 지린성을 살펴보자. 2014년 8월 31일 장더장 계열인 지린성 서기 왕루린(王儒林,61)이 면직당하고 후임에 바인차오루(巴音朝魯 58)가 임명되었다. 바인차오루는 몽골족으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저장(浙江)성 서기를 지낼 당시 부성장 및 닝보시 서기 등으로 함께 근무한 적이 있다. 9월 4일, 지린성 간부급 관리 7명이 일시에 낙마했다.

 

다음으로 광둥성은 어떤가. 장쩌민세력은 광둥성을 오래 경영했고 기업이 밀집한 선전, 광저우, 둥관 등은 장쩌민 파 광둥성 핵심거점이었다. 지난해 홍콩 위기일 때 광저우와 선전은 장쩌민파가 위기를 조장했던 근거지였다. 그러나 광둥성 서기가 2012년에 후진타오 인맥 후춘화로 바뀌면서 광둥성에서 장파 세력에 제동이 걸렸다.

 

시진핑의 광둥성 소탕 작전은 작년 홍콩 민주화 운동 당시부터 시작되었다. 2014년 4월 17일 화룬(華潤)그룹 회장이자 당위원회 서기인 쑹린(宋林)이 중기위의 조사를 받았다고 공개했고 6월 장쩌민파 2인자 쩡칭훙을 연금했다.

 

그러자 6월 10일 장파가 반격을 가했다. 장파는 홍콩의 ‘일국양제(一國兩制)’를 무산시키는 정치 백서를 발표해 홍콩에 파문을 일으켰다. 시민 51만 명이 가두시위에 나섰고 80만 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홍콩은 시위대와 진압경찰 그리고 시위를 반대하는 시위대로 계속 들끓었다. 장파는 홍콩에 ‘반()공산당’ 분위기를 격화시킨 다음 법치를 말하는 시진핑이 유혈사태를 벌이기를 원했다.

2014년 홍콩 우산운동 시위 현장(사진=대기원)

 

시진핑은 홍콩 상황에 아랑곳 하지 않고 초강경 수를 두었다. 백서 발표 4일 후 14일 쩡칭훙의 보좌관이자 정협 부주석인 쑤룽(蘇營)을 면직시켰다. 그리고 25일 쑹린의 정협의원 자격을 박탈했다. 30일 홍콩 행정장관 렁춘잉을 4일 동안 정직시키면서, 쉬차이허우(徐才厚)의 낙마와 기소, 광저우시 서기 완칭량(萬慶良) 조사, 610판공실 주임 리둥성(李東生) 입안심사 등 장파 고관들을 줄줄이 처리했다.

 

그리고 완칭량 광저우시 서기 후임으로 광저우와 연고 없는 실력파 런쉐펑(任學鋒,51)을 임명했다.

 

올해 3월 말 시진핑의 칼날은 선전 시로 향했다. 장쩌민의 처조카이자 선전시 서기였던 왕룽(王榮 57)이 서기 직에서 물러났고 후임으로 마싱루이(馬興瑞,56)가 부임했다. 그는 시진핑의 부인 펑리위안과 동향 사람이며 37세에 하얼빈 공대 부총장에 오른 실력자다. 이어서 5명의 고위관리를 교체했다.

 

선전시 장파를 정리한 당국은 현재 광둥성 둥관시 타이쯔 호텔 회장 량야오후이(梁耀輝,43)의 부패를 재판하는 중이다. 그는 둥관시 ‘매춘업계’에서 ‘석유업계’로 다시 정치계로 들어선 인물이다. 량야오후이 보호우산은 장쩌민파 상무위원 저우융캉, 쩡칭훙, 장더장이다. 량의 전성기는 장더장이 광둥성 서기에서 국무원 부총리로 전임했을 때다. 장더장이 광둥성에서 재임할 때 광둥성의 매춘업은 대대적으로 발전했다.

 

장더장의 3대 근거지인 광둥성, 지린성, 저장성 중에서 남아있는 곳은 상하이 시와 근접한 저장성뿐이다. 그러나 저장 출신의 강력한 장파인물 쑤룽이 이미 낙마했다.

 

지난 3월 29일 베이징에서 거행된 홍콩기본법 반포 25주년 좌담회에, 당연히 참석할 것으로 예견되었던 장더장이 출석하지 않아 이미 실권한 것이 아닌가 하는 예측을 낳고 있다. 장더장의 뿌리가 사라질 날은 머지않았다고 보인다.

 

NTD Korea 김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