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둥성 메르스 병원 간호사들 너무 두려워(한,중)

[www.ntdtv.co.kr   2015-06-09 04:38 PM] 

 

간호사 보호복 입는데 10분, 장갑은 4중(인터넷 사진)

 

[앵커]

한국은 현지 시간 6월 8일까지 MERS 확진환자가 87명, 격리 2,361명, 사망 6명입니다. 광둥 후이저우(惠州)의 한국인 김봉국(金鵬國) 환자는 중환자실 입원 12일째이지만 관방은 그의 병세가 여전히 중하다고 전했습니다. 김봉국씨에게서 첫 채혈한 사람은 새내기 간호사 줘스(卓斯)였는데 그녀는 보호 장갑을 4벌이나 끼고 작업했다고 합니다.

 

[기자]

중국 시나(新浪) 특고에 따르면, 6월8일은 MERS가 중국 본토에 상륙한지 14일째 되는 날입니다. 그리고 메르스 바이러스의 최대 잠복기는 14일이라고 합니다. 한국인 김봉국은 중국의 첫 번째 MERS 확진 환자입니다. 김봉국은 후이저우시 중심 인민병원의 중환자실에 격리됐습니다.

 

이는 일반적인 중환자실이 아닙니다. 병실 안의 기압은 병실 바깥보다 낮아 바깥의 공기는 병실로 흘러들어 올 수 있지만 안의 공기는 흘러 나갈 수 없습니다. 병실 안의 오염된 공기는 전용 통로에서 처리를 거친 후 외부로 배출됩니다.

 

90년대 태생인 간호사 줘스는 지난해 7월에 막 졸업했습니다. 줘스가 처음으로 김봉국의 피를 뽑을 때, 그녀는 장갑 네 벌을 꼈습니다. 보통 채혈할 때는 장갑 한겹만 낍니다. 머리에는 또 슈라우드(shroud)를 썼는데 눈 부위만 투명한 유리이고 기타는 모두 봉폐됐습니다. 그녀가 호흡을 하기만 하면 안에는 증기가 낍니다. 바깥은 (에어컨으로) 공기 온도를 약간 낮추고, 안은 더운 공기여서 호흡을 빨리 할수록 증기가 더 많이 낍니다. 채혈을 마치고 나면 유리가 전부 흐릿해지고 잘 보이지 않아 어디로 나가야할지도 모른답니다.

 

병원의 이름을 알려주기 바라지 않는 한 직원이 하는 말이, 감압병실 간호사의 위험은 무척 커서 한 발작도 떠나지 않고 환자를 보살펴야 하고, 늘 환자의 타액, 분비물 등과 접촉해야 하는데, “줘스는 당시 몹시 긴장해 막 울고 싶었답니다.”

 

줘스가 처음으로 김봉국과 만났을 때, 그는 마침 눈을 뜨고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두 눈은 정기가 없었고, 표정은 좀 우울하고도 또 분노한 것 같기도 했습니다. 줘스는 말했습니다. “그의 정서가 안정되지 않을 때면 나는 상대적으로 친밀하게 접촉하고 그의 이마를 짚어주면서 그에게 힘을 내게 해줍니다.” 그녀는 말했습니다. 이 한국인은 “아주 예의 있어요,” “어떤 땐 화를 내지만 곧 사과합니다. 해열제를 먹으면 땀이 무척 많이 나므로 우리는 침대시트를 자주 갈아줍니다. 그러면 그는 우리에게 감사를 표해요.”

 

언어 소통이 안되지만, 번역 소프트웨어에 의거하여 김봉국은 자신의 병세가 사망과 얼마나 먼지를 알게 됐습니다. 줘스 간호사는 “나는 화면에다 ‘걱정하지 마세요, 함께 곤란을 이겨나가요.”라고 써주었다고 말합니다.

 

전염병 간호 경험이 풍부한 리춘메이(李春梅)도 마찬가지로 ‘두려워했습니다.’ 그녀는 제1반에서 MERS 환자를 간호하는 간호사입니다. 그녀는 한토막 기억을 말해주었습니다. 중간 방을 지나 격리문 앞에 서는 찰나에 “머리끝이 쭈뼛해 졌습니다.” 이날부터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집에는 5살짜리 딸애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아마 전국에서 최초의 사례일 것입니다.” 펑밍(馮明)은 사스가 다시 오는 게 아닌지 하는 두려움에 모두 떨었다고 합니다.

 

김봉국은 1971년도 생이고, 그의 부친은 한국에서 세 번째 MERS 환자이며 여 동생은 네 번째 환자라고 합니다. 그는 5월 23일부터 24일까지 병원에서 부친을 보살펴 드렸으므로 MERS환자와 밀접히 접촉한 사람에 속합니다. 중국으로 출장 올 때 그는 이미 불편함을 느꼈고 열이 났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그는 비난을 받습니다. 중국 네티즌뿐 아니라 한국 네티즌도 그의 행위는 ‘치욕’이라고 했습니다. 사스의 영웅 의학자 중난산(鍾南山)도 공개적으로 매스컴에 언급했습니다. “그는 마땅히 한국을 떠나지 말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