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ntdtv,co,kr 2015-06-09]
1990년 6.4 학생시위를 지지한 이유로 자오쯔양(趙紫陽) 총서기는 강제 사퇴당하고 가택연금에 처했다. 그 후 15년 동안 두문불출할 수밖에 없던 그는 2005년 1월 17일 사망한다. 당시 총서기는 후진타오였지만 실권자는 장쩌민이었다. 장쩌민은 자오쯔양을 몹시 미워했고 그 때문에 후진타오 총서기는 자오쯔양 사망 후 그를 재평가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비공개로 열린 자오쯔양의 장례식에는 홍일대와 홍이대 인물 4천 여 명이 모였다. 권력을 잃은 지 15년, ‘정승의 개가 죽은 것이 아니라 정승이 죽은 장례식’에 최고 실세 장쩌민이 눈을 부릅뜨고 있는데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마오쩌둥은 정권을 잡은 후 끝없는 정치운동을 통해 혁명 동지들을 순차적으로 숙청했다. 그리고 충성맹세를 받으면 적절한 시기에 복권시켰다. 덩샤오핑도 세 번이나 숙청당했다가 결국 세 번째에 충성을 맹세하고 복권을 받았다. 혁명 1세대는 폭풍 같은 세월 속에서 암암리에 서로를 도우며 난관을 이겨나갔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혼인도 하면서 단순히 돈과 권력의 이해추구만이 아닌 강한 유대관계를 맺었다.
2012년 2월 6일 미국 영사관으로 도피한 왕리쥔으로 보시라이 사건이 시작된다. 당시 상무위원은 후진타오, 우방궈, 원자바오, 자칭린, 리창춘, 시진핑, 리커창, 허궈창, 저우융캉의 아홉 명이었다. 이 중 자칭린, 리창춘, 허궈창, 우방궈, 저우융캉 다섯 명이 장쩌민 파였고 후진타오, 원자바오, 리커창이 우파였다. 처음에 중도를 표명했던 시진핑은 미국 방문 후 보시라이의 쿠데타 계획을 알게 된 후 보시라이 엄중 처벌로 입장이 바뀌었다.
2012년 3월 14일 양회(兩會)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이 보시라이 사건을 질문하자 원자바오 총리는 ‘엄중 처리’라는 견해를 밝혔으며, 다음 날 15일 당국은 보시라이가 충칭시 당서기 직위에서 면직됐다고 발표했다. 보시라이 처벌 수위를 놓고 아홉 명 상무위원이 토론한 결과 보시라이 처벌을 반대한 사람은 장쩌민 파 중에서도 오직 저우융캉 뿐이었다. 장파 상무위원 5명 중 4명이 보시라이 처벌을 찬성한 것이다.
그 후 보시라이 처벌은 ‘축소’로 가닥이 잡혔다. 그러자 시진핑은 사퇴의사를 밝히면서 9월 1일부터 14일까지 잠적했다. 시진핑 없이 모든 계파의 이해관계를 조화시킬 인물이 없다고 판단한 고위층은 무조건 시진핑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보시라이 처벌이 다시 ‘엄중’으로 돌아섰다.
그 결과, 당국은 9월 28일 보시라이가 7대 범죄를 저질러 당적과 공직을 박탈했다는 발표를 냈다. 같은 날 유엔인권위원회는 중공의 생체장기적출을 맹비난했고, 중국 인터넷에 장쩌민파의 생체장기적출에 대한 논란이 일시적으로 풀렸다. 전해지는 말로는 대세가 기울었다고 생각한 장쩌민은 꼬리자르기에 들어가 보시라이가 반인도적인 죄를 저질렀다고 발언했다.
장쩌민 일파에게 태자당 출신 보시라이와 쩡칭훙은 보물 중의 보물이었다. 누군가 장파의 정통성에 시비를 걸면 두 사람 중 하나를 내세우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파는 이렇듯 중요한 보시라이마저 도마뱀 꼬리처럼 잘라냈다. 장파의 유대관계는 공산 귀족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허술하다. 그들은 돈과 권력을 위해 모였기 때문에 돈과 권력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이다. 여기서 공산 귀족의 단결력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의 집단 이기주의가 머슴들의 개인이기주의와 대조됨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런 머슴들을 공략하려면 변두리부터 공격하는 것이 좋다. 한 명을 잡아 취조할 때 처벌 수위를 경감해 준다고 조건을 대면 이런 저런 자백이 술술 나오기 때문이다. 시진핑과 중기위는 이런 식으로 장파를 공략했다.
장파 요원들이 장악한 주요 성시는 다음과 같다. 저우융캉은 쓰촨성과 신장 자치구, 쩡칭훙은 상하이, 지젠예는 난징, 뤄즈쥔은 장쑤, 지원린·탄리·장딩즈는 하이난, 완칭량은 광저우, 친광룽은 윈난, 쑤룽은 장시를 장악했다.
그러나 장파의 중요한 인물 저우융캉이 체포된 후, 모든 성시는 중앙의 저우융캉 체포에 공개적인 지지를 표했다. 쑤룽과 완칭량등이 낙마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상하이의 한정은 저우융캉 처벌을 직접 반대하지 못하고 시진핑에 대한 반감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수준이었다. 하이난 성은 중앙과 일치하겠다고 하면서 저우융캉 처벌을 간접적으로 지지했다.
장쩌민의 남자 장더장은 전국인민대표자회의 상무위원장으로 장쩌민의 대변인이다. 중국에서 장쩌민 파는 부패하고 인권탄압에 앞장 선 것으로 알려졌는데 장더장 역시 마찬가지다. 장더장의 세력은 광둥성, 지린성, 저장성에 많이 몰려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해 그의 세군데 세력권은 지금 거의 초토화 되어있다.
그는 왜 국외순방길에 오른 것일까? 중국 내외 언론가에 장더장이 외국의 유력 정치인들에게 자신을 초청해 달라고 부탁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전인대 상무위원장인 장더장은 그럴듯하게 형식상 의회 지도자의 초대를 받아서 해외 순방에 올랐다. 이는 일신의 안전을 위해 외교적 성과를 얻어 꺼져가는 입지를 강화하려는 것이었을까?
현재 중국에는 낙마해 판결을 받았거나 받을 예정인 장파 인물들이 매우 많다. 그들이 판결을 받을 때 마다 장파는 크게 술렁일 것이다. 중간 간부들은 고위간부들에게 ‘어떻게 좀’ 해보라고 요구할 것이며, 고위간부들은 마땅한 대책이 없어 매우 곤란할 것이다.
현재 중국에서 가장 큰 사안은 저우융캉 판결이다. 저우융캉의 판결이 어떻게 내려지든 판결은 가볍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저우융캉의 판결이 내려지면, 장파 고위관료, 그 중에서도 장파 상무위원 서열 1위인 장더장은 판결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장더장은 저우융캉을 위해 ‘불만’을 표시할까? 아니면 곤경을 모면하기 위해 해외 순방을 떠날까? 답은 거의 명확하다. 장파는 콩가루 집안이기 때문이다.
NTD Korea 김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