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운동 탱크 진압 증인 또 나타나(한,중)

 

[www.ntdtv.co.kr   2015-06-01 06:13 PM]

 

 

[앵커]

금년은 6.4사건 26주년입니다. 5월 31일,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둔 ‘휴머니태리언 차이나(人道中國,Humanitarian China)’ 등의 기구들은 “옥중의 89세대”라는 제목으로 6.4사건 26주년 세미나를 개최했습니다. 세미나에서는 6.4사건의 한 생존자가 전화로 회의 참가자들에게 자신과 학우가 탱크에 깔렸던 과정을 서술했습니다. 이로써 중공이 6.4때 탱크로 학생을 진압한 증거를 밝힌 증언자는 팡정(方政)을 포함 두 명이 되었습니다.

 

[왕콴바오(王寬保), 6.4사건 생존자]

“6.4 아침 천안문 광장에서 철수하던 중 같은 학과를 다니던 린런푸(林仁富) 학우가 류부커우(六部口)에서 탱크에 치어 사망했습니다. 나는 당시 중상을 입고 응급센터에 보내졌고 후에는 쉬안무(宣武) 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기자]

팡정과 전화연결이 된 왕콴바오는 당시 베이징 강철대학 연구생이었습니다. 그는 중공의 탱크에 깔려 골반이 분쇄됐고 그의 친구인 린런푸 박사는 탱크에 치어 현장에서 사망했습니다.

 

[왕콴바오]

“그(린런푸)는 당시 이미 졸업했고 일본 유학 갈 비자도 나왔습니다. 그의 부인은 임신했었는데 일이 생긴 후, 직장과 가족의 압력으로, 어떻게 말할까요, 어쨌든 좀 정신이 비정상이 되어서 막 임신된 아이를 낙태시켰죠. 친구의 상황은 참 비참합니다.”

 

[기자]

당년의 목격자 구술과 녹화 자료 기재에 따르면, 1989년 6월 3일 밤중부터 6월 4일 새벽까지 수천을 헤아리는 완전 무장 병사들이 계엄령을 집행하기 위해 여러 경로로 탱크와 장갑차의 엄호 하에 천안문으로 쳐들어왔습니다. 그들은 오는 도중 연도를 향해 총을 쏴 천 명 정도의 사람들이 사살 당했습니다.

 

[우런화(吳仁華), 6.4 역사자료 작가]

“베이징군구 텐진경비구 제1사단의 탱크 몇 대가 학생들의 배후로부터 돌진해 왔습니다. 학생들은 당황해서 흩어졌습니다. 그러나 길가로 자전거를 밀고 가면 별 일 없을 줄로 알았던 왕콴바오와 린런푸는 무자비하게 탱크에 깔렸습니다. 친구는 즉사하고 왕콴바오는 분쇄성 골절로 지금까지도 여전히 신체적 괴로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팡정, 6.4 생존자]

“류푸커우의 참사를 여러분 모두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이제 또 한사람의 증인이 나왔습니다. 물론 (증인이 언급한 사망자 외에) 더욱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살아있는 생존자는 이런 진상, 이런 역사를 여러분에게 알려 줄 책임이 있습니다.”

 

[저우펑숴(周鋒鎖), 6.4 학생운동 지도자]

“우리는 팡정을 알고 있는데 그는 당시의 산 증인입니다. 그의 증언은 중공의 수많은 거짓말을 철저히 타파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왕콴바오가 나섰는데 그는 탱크 아래에서 생존한 두 번째 생존자로서 의의가 아주 큽니다.”

 

1995년 왕콴바오는 미국에 왔고, 지금은 컴퓨터 영역에 종사하고 있는데 6.4때 당한 부상으로 수술을 10여 차례 했지만 지금까지도 완치되지 않았습니다. 이번 6.4사건 26주년 세미나에서 증언을 한 왕콴바오는 팡정 이 후 공개적으로 중공의 6.4 유혈진압의 증거를 밝힌 두 번 째 증인입니다.

 

NTD 뉴스 마젠(馬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