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ntdtv.co.kr 2015-02-04 10:32 AM]
– 세계적 석학 로드릭 맥파커 교수, 인터뷰서 주장
– “최대 부패세력인 장쩌민 계파 몰아내야 성공”
중국 시진핑 주석은 18대 당대회에서 5세대 지도부로 확정된 후 공산당 내부에서 반부패 투쟁을 시작했다. 또한 장쩌민 계파의 권력을 약화시키고 대규모 군인사를 단행, 권력구도를 개편했다. 이러한 개혁에 당 간부·공직자들은 큰 위협을 느끼고, 중국민중은 환호하고 있다. 그러나 그 성패에 대해는 아직 미지수가 많다는 것이 외신의 평가다. 중국현대사와 공산당정치사에 관한 세계적인 석학 로드릭 맥파커(Roderick MacFarquhar) 美 하버드대 교수는 “공산당은 스스로를 진정하게 개혁할 수 없다. 만약 시진핑이 부패척결을 철저하게 추진하면 공산당은 붕괴할 것”이라고 논평했다.
시진핑의 강점
<뉴욕타임즈> 인터넷판은 1월30일 맥파커 교수와 1문1답형식의 특별 인터뷰 ‘시진핑의 하이리스크 정책, 공산당을 구할까(Q. and A.: Roderick MacFarquhar on Xi Jinping’s High-Risk Campaign to Save the Communist Party)’를 게재했다.
이 인터뷰에서 맥파커 교수는 시진핑을 덩샤오핑 이후 중국 지도자 중에서 최고 카리스마로 평가하며 시진핑의 여러 강점과 차기 지도자로 낙점된 이후 제대로 된 도전자가 없었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문화대혁명 때 시 주석이 반동세력으로 몰려 갖은 고초를 겪었음은 잘 알려졌다. 맥파커 교수는 문화대혁명을 직접 경험한 한 대학원생의 발언을 소개하며, 문화대혁명의 시련이 시 주석에게 강한 자신감을 길러줬을 것으로 분석했다.
“대학원생의 주장에 따르면, 문화대혁명 같은 큰 어려움 즉 집에서 쫓겨나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살아남은 경험, 혹독한 시련을 극복한 경험으로 시진핑은 도전을 두려워않은 자신감을 키웠을 것이다.”
1966년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자 시진핑의 부친 시중쉰(習仲勳)은 반동세력으로 몰렸다. 중학생이던 시진핑은 반동학생으로 분류돼 강제로 학습반에 보내졌다. 이곳에서 시진핑은 하방(농촌으로 내려가 노동)을 자청, 부친이 일했던 산시(陝西)성 북부 옌촨(延川)현 량자허(梁家河) 지방에 내려가기로 했다. 1969년의 겨울, 16세 시진핑은 2만명의 청년지식인들과 서부내륙행 열차에 올랐다. 시진핑은 이때를 회고하며, 연안(延安)으로 가는 열차 안이 온통 울음바다였지만 자신만 웃었으며, 배웅하던 가족들의 왜 웃느냐는 질문에 ‘오히려 안 가면 울었을 거다. 베이징에 남았다면 생사조차 장담할 수 없을텐데 갈 수 있다는 게 좋은 일 아니냐, 울긴 왜 우냐’고 했다는 내용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베이징에서 농촌으로 간 시진핑은 급작스런 환경변화에 적응할 수 없었고 결국 3달만에 베이징으로 되돌아 갔다. 베이징의 분위기는 예상보다 살벌했고, 시진핑은 혁명에 거슬리는 분자라는 죄목으로 붙잡혀 반년동안 갇혔다. 반년 후 석방된 시진핑은 다시 연안으로 내려가 7년을 머물렀다. 이 시절 시진핑의 생활에 대해
한편 출신성분이 우수한 ‘근정묘홍’(根正苗紅) 태자당의 일원인 시진핑은 ‘공산당의 영원한 통치를 보위한다’는 정치적 책임감도 함께 갖추고 있는 인물이다. 맥파커 교수는 이러한 출신배경을 시진핑의 경쟁우위로 꼽았다. 중국공산당은 권력이 특정집안에 몰리는 것을 기피하지만 여전히 ‘홍색’ 출신성분을 중시한다. 공산당 8대 원로 천윈(陳雲)은 만년에 당내 고위층을 향해 “공산당의 통치가 흔들려선 안된다. 후계자는 집안사람을 시켜야 믿음직하다”고 경고했다. 원로세력의 눈에 장쩌민·후진타오는 잠시 정권을 관리해주는 가신일 뿐이다.
시진핑의 위기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맥파커 교수는 “공산당이 이데올로기 없이 지속한 역사적 사례가 있냐”는 질문에 “없다”고 답했다. 맥파커 교수는 “쿠바공산당이 살아남은 것은 당시 소련의 경제적 원조가 있었기 때문”이라면서 “북한이 남아있을 수 있는 것은 중국공산당이 아직 내칠 준비가 안됐기 때문이다. 중국공산당은 북한 집권세력에 불만이 많지만 그렇다고 또 하나의 공산주의 정권이 끝장나는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또 맥파커 교수는 “그 밖의 사례는 없다. 개인적으로 중국공산당이 스스로를 개혁할 수 없을 것 같다”면서, “만약 시진핑이 부패의 가지와 뿌리를 쳐내려 한다면 진짜 위험해질 것이다. 러시아처럼 당이 붕괴되거나, 시진핑에 반대하는 고위층 연맹이 나타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진핑의 우려
구소련이 1당독재를 포기한지 올해로 25주년이다. 비슷한 시기에 중국에서는 천안문 대학살이 일어났다. 구소련의 해체, 동유럽 공산주의 진영의 붕괴는 중국공산당으로서는 부인하고 싶은 현실이었다.
지난해 시진핑은 18대 4중전회에서 법치주의(依法治國)를 제창했다. 중국 안팎에서 중국공산당이 구 소련공산당처럼 1당제를 포기하는 쪽으로 가리라는 기대와 전망이 이어졌다.
또 최근 중국공산당 관영지 ‘홍기문고(紅旗文稿)’에서는 반부패 정책을 지지하는 논평이 실렸다. 이 논평에서는 “부패척결하지 않으면 당이 망하고, 정말로 부패척결해도 당이 망한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부패척결하더라도 갈수록 더 탐오하고 부패할 것”이라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겉으로는 맞는 것 같지만 사실과는 다른, 잘못된 관점”이라고 반박했다.
중국 내부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시진핑은 반대파 연맹과 마주칠 위험이 있다. 시진핑이 만날 최대 저항세력은 부패한 장쩌민 세력이다. 장쩌민은 집권기간에 부패를 통치수단으로 삼았기 때문에 부패하지 않은 공직자가 없다. 이 시기가 중국공산당이 가장 부패했다는 게 다수 학자들의 공통된 인식”이라고 말했다.
중요한 점은 장쩌민이 집권기간에 다른 상무위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독단에 의해 파룬궁 박해를 명령했다는 점이다. 15년동안의 박해가 국제사회에 알려지면서 비난여론이 들끓고 있다. 시진핑은 장쩌민이 남긴 빚을 승계하는 대신 반부패 정책을 내세워 장쩌민 세력을 청산하고 있다. 장쩌민 세력의 완강한 저항은 필연적이다.
시진핑의 위기해법
맥파커 교수는 시진핑이 민족주의 전략을 펴고 있다고 말했다. 외교와 반부패 정책에서 민족주의를 내세워 민심을 자기쪽으로 끌어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맥파커 교수는 공산체제 하에서 민족주의·유교·마르크스주의 외에 별다른 해법이 없다는 것이 시진핑의 커다란 우려라고 지적했다.
시진핑 집권 후 지금까지 당내 반대파의 암살시도가 6차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진핑이 반부패 정책을 이용해 특정 적대세력과 투쟁한다면 민심을 얻고 일시적 승리를 거둘 수 있겠지만 중국공산당의 물고 물리는 권력구조 속에서 다른 세력으로부터 피살될 수도 있다는 관측까지 제기되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시진핑은 위기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전문가들은 장쩌민 세력이 저지른 최악의 범죄를 밝혀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파룬궁에 대한 박해와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생체장기적출을 조사하고 장쩌민 체포를 선언하면 정치적 반대세력이 무너지고 중국공산당 체재가 총체적으로 해체된다는 것이다. 시진핑 자신과 중국의 안위를 위한 최선의 해법이다.
NYD뉴스 리징(李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