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ntdtv.co.kr 2014-12-27 10:44 AM]
현임 중공 총서기 시진핑이 정식 취임하기 전 갑자기 13일 동안 은신했던 사건에 대하여 관방의 공식 발표는 아직 없다. 그러나 당시 대부분의 추측은 시진핑이 사직을 청했는가 여부에 귀결되었다. 지금 전 중앙 판공청 주임 링지화가 낙마된 후, 당시의 내막에 대해 언론이 다시 거론하기 시작했다. 이번 설에는 링지화 까지 연루되어 있는 것이다.
2012년 18대 권력 교체 전, 중국 정세는 손에 땀을 쥐게 했다. 그 와중에서 시진핑이 갑자기 은신했고, 이어서 그가 총서기 취임에 사의를 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소문이 떠돌면서 여론이 들끓어 올랐다.
2012년 9월 1일 시진핑은 중공 중앙당교 개학식에 참석한 후, 종적이 사라졌다. 미국 국무장관 힐러리, 싱가포르 총리 리센룽 및 덴마크 수상 슈미트와의 회견을 포함한 공식 외교활동이 여러 건 취소되었다. 이 때문에 암살, 병세 위중 등 설이 당시의 언론계에 만연했다.
9월 15일이 돼서야 시진핑은 농업대학 과학 보급일 행사에 나타났다. 이 13일 동안 시진핑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중공 관방이 지금도 발표하지 않고 있으므로 외부에서는 함부로 추측하기 힘든 점이 있다.
금년 12월 22일, 중공 중앙 통전부 부장 링지화가 낙마했고, 그와 저우융캉의 정치 거래도 폭로됐다. 해외 보쉰 사이트는 링지화가 낙마한 날, 한 제보자가 당년 시진핑이 13일간 은신한 내막을 알려 주었다고 하면서, 예전의 소문과 다른 점이라면 링지화가 중요 배역에 끼어들었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제보자에 따르면, 2012년 8월 29일, 중공 고위층은 18대 후 중앙 정법위서기를 정치국 상무위원에서 제거한다고 합의를 보면서 정치국 상무위원 인원수를 9명으로부터 7명으로 줄였다. 그 목적은 정법위 계통의 권력을 약화시키려는 것이었다. 또한 저우융캉도 중앙 정법위 서기직을 멍젠주에게 넘겨주는데 동의했다. 이는 시진핑이 단호하게, 저우융캉이 사직하지 않으면 그는 총서기 직무를 맡지 않겠다고 발언했기 때문이었다.
근일, 소식통 뉴레이(牛淚)도, 전 총서기 후진타오가 18대 상위를 9명에서 7명으로 조절하고 정법위서기가 더는 정치국 상위를 맡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 2012년 5월 이전이라고 밝혔다.
2012년 5월, 외국 언론도 저우융캉이 더 이상 정법위서기를 맡지 않을 수 있다고 암시했다. 2012년 5월 13일 영국 ‘파이낸셜 타임즈’는, 표면상으로는 저우융캉이 여전히 정법위서기와 정치국 상무위원이지만, 중공 고위층 및 외교계통의 3명 이상의 제보에 따르면, 지금 그의 권력은 이미 공안부장 멍젠주에게 넘어갔다고 보도했던 것이다.
보쉰 제보자는 밝혔다. 원래 중공 고위층은 저우융캉을 낙마시키면 시진핑으로부터 더 이상의 요구가 없을 줄로 알았다. 그러나 시진핑은 2012년 9월 1일, 매우 놀라운 요구를 또 하나 제시했다. 당시 중앙 판공청 주임 자리에서 링지화를 내리고 구이저우성위서기 리잔수(栗戰書)를 임명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요청은 처음에는 중공 원로들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원래 시진핑은 그날 회의를 마치고 태자당의 후더핑 등 친한 친구들과 브리지 놀이를 하러 가기로 약속했지만 가지 않았다.
이튿날, 중공 고위층은 긴급회의를 열어 시진핑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링지화를 통전부장으로 전임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다음날인 9월 3일, 링지화는 중앙 판공청 주임 직위에서 즉각 해제되었다.
시진핑은 왜 링지화와 저우융캉의 제거를 조건으로 했는가?
당시 보시라이는 이미 낙마했고, 저우융캉과 보시라이가 정변을 밀모했음이 시진핑에게 알려졌다. 저우융캉은 몇 번이나 보시라이 건 조사를 중단시키려 하면서 보시라이를 구해내려 했다. 시진핑은 우선 이런 일을 철저히 막아야 했다.
2012년 3월 18일 베이징에서 페라리 승용차의 교통사고가 발생했고 죽은 자는 링지화의 아들 링구(令穀)였다. 차에는 여자 두 사람이 있었는데, 당시의 소문은 링구와 여자들이 차내에서 서로 희롱하다 사고가 났다고 했다. 링지화는 이 일을 덮어 감추려고 경위국을 움직이는 월권을 저지르면서 저우융캉과 모종의 정치거래를 했다. 후진타오는 몇 달 후에야 이를 알게 되어 몹시 분노했다. 사람들은 이번 교통사고로 링지화의 벼슬길은 내리막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교통사고에 대한 처리는 시진핑이 링지화를 크게 의심하는 계기가 되었다. 시진핑 입장에서는 보시라이를 구해내려 애쓰는 저우융캉과 링지화 사이에 협력관계가 있을 것으로 보였고 이는 참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9월 1일, 시진핑은 또 한 번 이의를 제기했고, 중공 원로도 결국 할 수 없이 시진핑에게 동의했던 것이라고 제보자는 설명했다.
제보자가 준 정보에서 엿볼 수 있는 것은, 저우융캉이 보시라이 안건 진행을 지연시키건, 아니면 보시라이를 잘라내고 자신을 보호하려 하건 상관없이 링지화가 저우를 도와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행위들이 모두 가능하다는 점이 시진핑을 격노케 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사평론가 리텐샤오(李天笑)는 링지화 건에서 사람들이 간과하기 쉬운 점을 지적했다. 바로 링지화가 이끄는 통전부 해외 특무 시스템은 파룬궁 박해에 직접 참여했던 것이다.
리텐샤오는 설명한다. ‘이상을 종합해보면, 링지화가 조사당한 진정한 원인은 그가 장파와 결탁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링지화는 시진핑이 장쩌민을 잡을 때 반드시 정리해야할 대상에 오른 것이다.’
NTD뉴스 리후이(李慧)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