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ntdtv.co.kr 2014-10-30 10:57 AM ]
2013년 8월 24일, 지난 중급 법원에서 보시라이 건에 대한 3일간의 심리가 끝난 후, 경찰차가 보시라이(오른쪽 차)와 왕리쥔(왼쪽 차)을 싣고 갔다.(펑리 /게티 이미지)
NTD의 한 소식통이 최근 왕리쥔이 미국 영사관으로 야반 도주한 경위를 NTD에 알려왔다. 그 스토리는 국제사회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아슬아슬 했다. 고속도로에서 네 번 차를 바꿔 타면서 추살을 피했을 뿐만 아니라 마지막에는 또 미국 영사관원을 ‘인간방패’로 이용해야 했다.
네 번 차를 바꾸면서 추살을 피하다
왕리쥔은 2012년 2월 6일 미국 주재 청두 총 영사관에 도착하기까지 극히 손에 땀을 쥐는 도주 과정을 겪었다. 충칭 발 청두 길에서 4차례나 차를 바꿔 타면서 추살을 피했다. 한 번은 교통사고로 길가에 서있는 파손된 차에 몸을 숨긴 후, 자기 차를 다른 사람이 몰게 하여 추살자를 유인해서 위기를 벗어났다고 소식통은 말했다.
청두에 진입하기 전에 왕리쥔은 차에서 내려 걸어서 도로 요금소를 우회했고, 다른 사람이 차량으로 요금소를 통과한 후 왕리쥔을 차에 태웠다.
미영사관에 진입하기 전 ‘아무 일도 없는 듯’ 연락
보안상 NTD는 소식통에 관한 어떤 정보도 밝힐 수 없다. 하지만 소식통은 기존 모든 보도보다 훨씬 상세하고 정확했다.
어떤 보도는 왕리쥔이 미영사관에 진입하기 전에 정치 망명 신청을 제출했다고 보도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반대로 그는 당시 스촨성 외교 사무실(외사판 外事辦)에서 일하는 한 직원에게 청하여 전화로 미국 영사관의 상무장관에게 연락을 넣어 왕리쥔이 방문할 예정이라고 말하게 했다. 상무장관은 만나는데 동의했고 부근의 스타벅스에서 차를 마시면서 얘기하자고 제의했다. 외사판 직원은 좋습니다, 문제 없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1, 2시간 후, 충칭시의 장씨 성을 쓰는 한 외사판 직원이 또 전화로 왕리쥔은 부시장 신분이므로 그래도 영사관에 들어가서 만나는 게 비교적 좋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 영사관의 상무장관은 곧 동의했다.
왕리쥔은 ‘큰일을 가볍게 처리하는’ 이런 방법으로 접견을 쉽게 예약했다. 만일 그 때 미국 영사관 측이 영사관 안에서 접견하는데 동의하지 않았더라면 왕리쥔은 영원히 미국 영사관에 갈 수 없었을 것이다.
미 영사관 직원이 인신방패로 사용되다
왕리쥔은 약 오후 1, 2시 정도에 스촨성 공안청 부청장과 함께 미 영사관에 도착했다. 당시 왕은 몹시 긴장한 상태였다. 그는 허리를 구부리고 머리를 숙인 아주 괴상한 자세로 미영사관 직원을 따라 서둘러 들어갔다.
후에 왕리쥔은 미국 영사관 관원에게 알려 주었다. 그는 그 때 영사관 길 맞은편 쪽에 몇 사람이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그들이 서있는 자세와 손을 호주머니에 들어있는 것을 보고는 그들이 무기를 지녔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했다. 그는 이들이 그를 추살하러 온 사람임을 인식하고 머리를 숙이고 허리를 웅크린 방식으로 미국 영사관 직원들 뒤에 숨어서 이동했다. 결국 미영사관 비즈니스 참사관과 비즈니스 담당관은 ‘부지’중 그의 ‘인신방패’가 된 것이다.
정치 망명 신청을 사전에 미리 쪽지에 써 놓아
왕리쥔은 미 영사관에 진입한 후 우선 ‘인사말’을 나누고 ‘과학기술, 문교 교류 합작’ 같은 ‘공무대화’를 나눈 후에야 쪽지를 내놓으면서 망명을 바란다고 했다. 당시 미영사관 직원은 그 말을 듣고 몹시 놀랐다고 한다.
미국 영사관은 몹시 긴장했다
왕리쥔이 미국 영사관에 진입한 후, 충칭시 시장 황치판(黃奇帆)은 무장경찰을 움직여 미 영사관을 포위했다. 미국 영사관 직원은 몹시 긴장하여 관련 영사관 직원에게 핸드폰을 끌 것을 요구하고, 아울러 다른 긴급연락 전화번호를 제공했다.
영사관 직원에게 핸드폰을 끌 것을 요구한 목적은 이 일의 처리 방침을 워싱턴으로부터 듣기 전에는 이 일에 대한 태도표시나 대답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핸드폰이 열려있는 상태에서 만일 충칭 방면에서 문의나 요구 등이 오면 대답하거나 태도를 취하기가 매우 불편했기 때문에 아예 꺼서 회피하려한 것이다.
그날 저녁 인터넷의 긴장도 매우 고조되었다. 웨이보에는 부단히 소식이나 사진이 올라오면서 왜 청두에 ‘교통관제’가 있고 ‘계엄’이 선포되었는지 질문들이 쏟아졌다. 그러나 이런 내용들은 5분 내지 10분 만에 삭제 되었다. 마치 거의 5분마다 한 번씩 훝어 보고는 삭제하는 것 같았다. 이 인터넷 삭제 작업은 원자바오가 나서서 의견을 발표하고 나서야 비로소 중지됐다.
왕리쥔 영사관에서의 진술 녹화 돼
왕리쥔이 망명 신청 이유를 서술한 후 미국 측에서는 이 일을 베이징 미국 대사관에 회보했다. 후에 베이징 대사관은 왕이 서술한 내용을 녹화해 둘 것을 요구했다. 저녁에 왕리쥔은 이 요구 때문에 다시 한 번 서술하여 녹화했다.
왕리쥔은 미 영사관에서 그의 한 패에게 ‘어서 도망하라’고 외쳤다.
왕리쥔은 그 때 2, 3개의 핸드폰 그리고 여러 개의 SIM 카드를 갖고 있었다. 영사관에 있는 동안 부단히 핸드폰, 카드를 바꿔가면서 외부와 연락을 취했다. 당시 상황은 아주 긴장된 상황이었다. 원래 왕은 어떤 사람에게 자료를 미 영사관에 가져오도록 안배해 두었는데, 누군가와 전화 통화 후 몹시 긴장하여 자료를 가져오기로 된 그 사람에게 전화하여 “어서 도망하라. 어서 도망하라.”고 하면서 마치 조금만 늦으면 생명위험이 있는 것 같이 말했다.
“조금만 방법이 있어도 나는 여기로 오지 않았을 것이다”
왕리쥔은 미국 영사관으로 달려오기 전, 영국 영사관에 연락한 것은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영국 영사관이 충칭에 있기 때문이었다. 왕리쥔이 당시 했던 말은, “무릇 조금만 방법이 있어도 나는 여기로 오지 않았을 것이다. 어제 저녁 내가 올 때 네 번이나 차를 바꿔 탔는데 줄곧 위험했다. 전혀 뛸 수가 없어서 걸어왔다. 먼 곳으로 망명할 수는 없고 해서 이곳이 유일하게 안전한 곳이었다.”
미국은 충칭의 상황을 ‘아주 잘’ 알아
왕리쥔과 미국 측 직원은 통화를 마친 후 모두들 백악관의 결정을 기다렸다. 전체적으로 보면, 미국 정부는 충칭시의 상황을 아주 잘 알고 있었으며, 왕리쥔 사건 전체가 미국에 대해 “유해한지 무해한지, 유리한지 무리한지”에 대한 판단이 아주 정확했다고 소식통은 판단한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정부는 아주 빠르고 간단하게 왕리쥔의 망명 신청을 거절했다.
반대로 왕리쥔의 발언들을 보면, 그가 미국정부에 대해 아는 바는 미국정부가 충칭, 왕리쥔, 더 나아가 중국 업무 자체에 대하여 아는 바에 훨씬 미치지 못했고 어떤 생각은 좀 ‘천진’하기 까지 했다. 예컨대 그는 미국이 자신의 정치 망명을 승낙하리라 여겼던 것이다.
“Buddy(친구)”라고 부르며 열렬한 포옹
소식통은 밝혔다. 미국 정부가 왕의 망명 청구를 거절했지만 왕이 대사관을 나가지 않으면 미국 정부도 그를 밀어내지는 못한다. 반드시 그가 자원적으로 떠나야 한다.
왕리쥔이 미 영사관에 체류하는 동안, 황치판은 왕리쥔과 대화했지만 왕을 설득하여 나오게 하지 못했다.
후에 베이징에서 한 사람이 왔는데 왕리쥔은 보자 그 사람과 “Buddy(친구)”라고 부르며 열렬한 포옹을 했는데 두 사람의 관계는 이만저만이 아님이 분명했다.
온 사람은 왕과 아주 오랫동안 얘기를 나누었고 후에 그 사람은 왕리쥔을 데려 갔다. 왕리쥔은 미영사관을 나갈 때 “하하 크게 웃었는데 아마도 일종의 모든 것을 포기한 때문일 수도 있었다.”라고 소식통은 말했다.
후에 사이트 소식을 보고서야 왕을 데려간 사람이 국가안전부 부부장 츄진(邱進)이었음을 알게 됐다고 소식통은 말했다.
왕리쥔은 최종에 베이징 측과 소통한 후 스스로 떠나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소식통은 이해했다.
NTD뉴스 샤오난(肖南)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