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ntdtv.co.kr 2014-10-04 12:14 PM]
오래동안 보이지 않던 장쩌민이 9월 29일의 ‘10.1’ 음악회와 9월 30일의 ‘10.1’ 연회에 모두 나타나 논란을 일으켰다.
29일의 ‘10.1’ 음악회에서 장은 시진핑과 나란히 앞 줄 중앙에 앉았는데 시는 왼쪽, 장은 오른쪽이었다. 시진핑 쪽으로는 현임 상무위원 리커창, 위정성, 왕치산이 앉았고 장쪽으로는 현임 상무위원 장더장, 류윈산, 장가오리가 않았다. 시, 장 두 진영이 물과 불처럼 분명히 구별됨을 네티즌들은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이번 음악회에는 장파의 쩡칭훙, 리란칭도 참석했지만 후진타오, 원자바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아 많은 추측이 일었다. 사람들은 장이 이번에 목숨 걸듯 모습을 나타낸 것은, 그가 병세가 위독해 입원치료 받고 있다는 소문을 불식시키기 위한 것으로 본다. 또 어떤 사람은 장의 출현은 장의 승리를 뜻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오랜 기간 내부 투쟁에서 그는 후, 원을 물리치고 시의 두터운 신임을 얻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통찰력이 있는 사람은 후, 원이 나타나지 않은 것은 후, 원이 안전하기 때문이고, 장과 쩡칭훙이 나타난 것은 그들이 머지 않아 시의 날카로운 반부패의 칼에 잘릴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라 판단할 것이다. 근일 중공 정치국은 4중 전회에서 장쩌민을 문책하라는 제의를 받았다. 장쩌민은 그의 탐오부패한 졸개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서 등장했을 수도 있다.어떤 사람은 그가 ‘얼굴을 내민 것’은 저우융캉이 낙마하기 전에 몇 번 나타났던 것과 마찬가지로 모두 중공 단결의 겉모양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30일의 ‘10.1’ 연회에는 웨이젠싱(尉健行) 등 8명을 제외한 시진핑, 장쩌민, 후진타오 등 현, 전임 상무위원은 모두 왔다. 그러나 이들의 얼굴에서는 명절기분은 찾을 수 없었다. 원자바오 한 사람만이 약간 웃음 띤 얼굴이고 나머지 사람은 얼굴이 엄숙하고 음울했다. 특히 연회석에 들어서는 일순간, 장, 후는 어깨 나란히 걸었으나 원수가 서로 만난 듯 얼굴이 굳어서 서로 아는 체도 하지 않았다. 비록 장의 등장에 대해 사람들마다 나름의 해석이 있고, 어떤 해석은 아주 심각하지만, 사람들이 어떻게 해석하던 간에 내 생각에는 장의 등장은 사람들 특히 중국 국민에게는 치욕적인 일이다.
우선, 후진타오, 원자바오에 대한 모욕이다. 후, 원이 재임한 10년은 장의 정치 간섭과 속박으로 정부의 지령은 중난하이에서만 맴돌았고, 정책 시행은 이루어진 것이 없었으며, 개혁은 더구나 말할 바도 못됐다. 그 10년 동안 저우융캉은 안정유지 명목으로 극도의 압제를 실시했으며, 경찰과 비적이 한 집안이 되어 국민을 억압, 사취하여 국민의 원성이 들끓었다. 후, 원이 29일에 출석하지 않은 것은 장과 한 자리에 앉아 또 모욕을 받기가 싫어서였다.
그리고, 시진핑에 대한 모욕이다. 표면적으로 중공의 화목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기 위하여, 시진핑, 장쩌민, 후진타오의 3대 당수가 연회석에서 자리를 같이했다. 세심한 사람은 장과 후를 대하는 시진핑의 태도가 뚜렷하게 달랐음을 보아냈다. 시진핑이 후진타오에게 술을 권할 때 시진핑의 얼굴에는 웃음이 활짝 피었고, 후도 아주 기뻐하는 모양이었다. 시진핑이 장에게 술을 권할 때 장의 표정은 굳어 있었고, 시진핑은 머리를 한 쪽으로 돌렸으며, 눈길을 마주치지 않았는데 존경해서인지 아니면 그를 혐오해서인지 알 수 없다.
마지막으로, 국민에 대한 모욕이다. 장은 10여년 임직했고 후에는 또 후-원 정권에 10년 간섭했다. 20여 년 동안 장쩌민과 휘하 관료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빼앗고, 탐오하고, 음란했으며, 나라를 팔아먹어 권리를 챙기고 중화에 재난을 초래했다. 신앙 자유를 탄압하고 파룬궁 수련생 생체에서 장기를 적출하여 돈벌이를 했다. 그는 사람을 살린다면서 죽지 못해 살게 했고, 심지어는 살 수 없게 만들었다. 많은 사람은 아예 그를 보기 싫어하며 심지어 그가 어서 죽기를 바란다. 그는 온갖 나쁜 짓을 다 했다. 살아있는 한 정치 간섭을 그치지 않을 것이고, 드러내 놓고 뽐내서 사람들의 이목을 더럽힐 것인데 이 역시 중국인에 대한 모욕이다.
첸자이윈(千載雲) 평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