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한 중공 오성홍기, 거꾸로 걸리자 민중 환호(한,중)

아침 7시 경, 진중(金鍾) 지하철 출구 앞의 하이푸(海富) 건물 5층 테라스.
시위 민중이 항의의 표시로 중공 ‘오성기’를 거꾸로 걸었다.(인터넷사진)

[www.ntdtv.co.kr 2014-09-28 09:52 PM]

홍콩의 중환점령 운동의 불길은 계속 타오르고 있다. 민중은 진중(金鍾) 지하철의 역전 대로를 밤새 지켰다. 28일 아침 7시경, 누군가가 지하철 출구 앞의 하이푸 건물 테라스에서 항의의 표시로 중공 ‘오성기’를 거꾸로 걸었고, 이를 보는 현장 민중들은 환호를 올렸다.

연일 이어지는 홍콩의 학생 시위는 최루가스 분무 등 무력을 동원한 경찰의 해산작전에 계속 쫓겨 다녔고 그 과정에서 70여명 학생이 경찰에 체포됐다. 28일 저녁까지 경찰과의 충돌에서 부상을 입은 사람 수는 적어도 34명이었다. 시위자들은 상업지구 도로구간을 막을 준비를 하면서 량궈슝(梁國雄)의 말을 인용했다. “우리의 요구는 변하지 않았다. 이는 시민의 평화적인 항의 시위다.”

28일 밤, 시위자들은 다시 진중의 간뤄 도로(幹諾道)에 집결했다. 경찰이 역시 최루탄을 발사하며 공격하자 시민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한 무리 시위자들이 천교(天橋)에 집결했다. 다리 아래에 있던 경찰이 즉시 위를 향해 최루액을 분무했다. 이 때문에 병원에 실려 가던 시민이 불편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많은 민중이 진중 지하철 역전 대로를 밤 새 지켰다. 홍콩 애플 데일리는 현장 인원수를 약 6천명으로 집계했다. 휴식 후 아침 7시경, 현장의 누군가가 지하철 출구 앞의 하이푸 건물 테라스에서 항의의 표시로 중공 ‘오성기’를 거꾸로 걸었고, 이를 보는 현장 민중들은 환호를 올렸다.

35분 쯤 후, 건물 직원이 중공의 ‘오성기’가 거꾸로 걸린 것을 발견하고 즉시 테라스에 올라 기를 바로 걸었다. 현장 시위 민중은 모두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중공의 ‘오성기’는 암흑을 상징

중공의 ‘오성기’는 실은 나라의 사분오열과 암흑을 암시할 뿐, 길한 뜻이 전혀 없다고 한다.

작가 즈렌(子蓮)은 일찌기 정견망에 올린 글에서 폭로한 바 있다. ‘문화혁명 당시 농촌 하방(도시에 일자리가 너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귀농함) 후 그는 한 노인을 알게 됐는데 이 노인은 청조말기, 중화민국, 만주국을 두루 살아온 사람이었다. 이 노인은 서당을 다녔고, ‘명현집(名賢集)’을 거꾸로도 유창하게 외웠으며, 풍수와 음택양택, 관상과 사주팔자를 보았으며, 점을 칠 수 있었다.’고 한다.

1978년, 노인은 술김에 진실을 토했다. 그에 따르면, ‘공산당은 바보여서 음양 술법을 모른다. 밝은 청천백일이 상서롭게 땅을 가득 비추는 중화민국 국기를 그들은 ‘오성홍기’로 바꾸었다. 별이란 무엇인가? 별은 캄캄한 밤을 대표하고 암흑을 상징한다. 다섯 개의 별은 나라가 4분5열됨을 암시함으로 길조가 아니다. 중국은 해가 없이 캄캄하고 서민은 도탄에 빠질 것이다. 신장, 티베트, 내몽고와 타이완은 분열하여 독립을 하려 할 것인데 모두 그 몹쓸 기가 가져온 화란이다.‘

그는 또 말했다. ‘베이징은 제왕 장상이 다수 배출된 길지이다. 중공은 천안문 앞에 사망자의 묘비를 세워 제왕의 맥을 끊었다. 때문에 용풍이 날아가 상서로움이 사라졌고, 오는 것은 모두 인간을 해치는 마귀뿐이다. 마오가 죽은 후 시체를 광장에 두었으니 광장은 묘지로 전락해 음산한 바람이 몰아치고 악마가 모여든다, 서민 백성이 화를 입는걸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