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간파하고 순식간에 처리한다-시진핑의 방식(한,중)

[www.ntdtv.co.kr 2014-09-11 12:44 AM ]

중공 전 중앙 군사위 부주석 쉬차이허우가 베이징 당국에 공식적으로 체포되었다. 이후, 국제사회에는 군부내 장파 거물인 전 중공중앙 부주석 궈보슝도 이미 당국에 연금되어 비밀 조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이 퍼졌다. 일전, 홍콩에서 발표된 유명한 평론은 시진핑은 애초부터 쉬, 궈 두 사람에 대해 ‘손바닥 보듯 간파했다’면서 시기가 성숙되면 ‘순식간에 체포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9월 11일 홍콩 ‘동방일보’는 ‘용음호소(龍吟虎嘯, 용이 울고 호랑이가 포효한다) 칼럼’에 ‘미리 알고 미리 배치하여 순식간에 그물을 걷어 올리다.’란 제목의 유명한 평론을 발표했다.

평론에 따르면, 시진핑은 중공 17대에서 ‘황태자’로 정해진 후 약 3년 동안, 관례대로 군부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군 서열 1위의 중앙 군위 부주석을 맡게 되었다. 비록 지위는 그러했지만 시진핑은 ‘군부 인사’에 끼어들 수 없었고, ‘군 지휘와 군 행정’에 간섭하기도 어려웠으며, 더욱이 부주석 신분이어도 자기 사람을 등용할 수 없었다. 그러나 시진핑은 당시 군부의 인사실권을 가진 쉬차이허우, 궈보슝과 함께 2년간 일하면서, “그들의 급소, 군부 내 기반, 여러 가지 문제점들, 개인적 품성 등에 대해 자연스레 숙지하게 되었다.”

작년 구쥔산의 탐오부패가 폭로된 후에도 사건 처리가 지지부진 했던 것은, 시진핑으로 하여금 군대 문제의 심각함과 복잡함을 충분히 알려주었다. ‘만약 18대 후 쉬차이허우와 궈보슝의 세력을 타도하지 않으면 그는 진정으로 군대를 통제할 수 없을 것이고, 후진타오처럼 장쩌민 및 그 방대한 세력의 그늘에 묻혀 살면서 꼭두각시 황제가 될 것이었다.’

따라서 쉬차이허우와 궈보슝을 체포하여 그들의 세력을 군에서 제거하는 것은 아주 시급한 일이었다. 그러나 등극한 지 얼마 안 된 시진핑이 총대를 든 ‘군부의 큰 악어’를 잡는 것은 “옛날, 소년 강희(康熙)가 큰 자라를 잡는 것과 아주 비슷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시진핑은 쉬차이허우를 제거할 때, 강희가 자라를 ‘궁중에 꾀여 들여’ 일시에 잡은 것과는 달리 `반탐오 반부패`를 통해 먼저 졸개를 잡고 한걸음 한걸음 전진해 가면서 여론이 크게 조성되자 시기가 성숙했다고 판단하고 “순식간에 그물을 거두어 들여 깔끔하게 마무리 지었던 것이다”.

이에 앞서, 시사평론가 천포쿵(陳破空)은 쉬차이허우가 공식적으로 당적을 취소당했을 때 자유아시아TV와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당시에 쉬차이허우는 중공군 정치부 주임이자 군사위 부주석인 제2인자로서 오래 동안 군 인사를 주관했다고 지적했다. 결국 과거와 현재의 장교, 장성 중 많은 사람은 쉬차이허우가 등용했으며, 쉬의 뜻대로 움직이며 관직을 매매했다. 시진핑이 쉬차이허우를 체포하자 이들은 심적으로 양자택일을 강요받았다. ‘나에게 귀순하여 충성하겠는가, 아니면 기다리다가 숙청되겠는가.’ 천포쿵은 말했다. “쉬차이허우는 정치국 위원, 서기처서기. 중앙 군사위 주석을 했으므로 ‘당과 국가의 지도자’ 위치에 있었다. 그 지위는 이전에 낙마한 정치국 위원 천시퉁(陳希同), 천량위(陳良宇), 보시라이보다도 높다. 쉬차이허우를 체포한 것은 아주 충격적인 일이었다. 이때 시진핑이 한 독백은 내가 쉬차이허우마저 체포하는데 누구인들 체포하지 못하겠는가?”였다.

쉬차이허우가 구쥔산의 부패에 연루된 것은 쉬차이허우 낙마의 표면적 이유일 뿐이다. 반부패 자체가 쉬를 체포하기 위한 하나의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보시라이, 저우융캉 등의 정변 밀모에 가담한 것이야 말로 첫째가는 큰 죄라고 천포쿵은 분석한다.

2004년 9월, 국내외 여론의 압력으로 장쩌민은 어쩔 수없이 2년 넘게 넘기지 않던 군사위 주석 직위를 후진타오게 넘겨주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장쩌민은 그의 측근인 쉬차이허우를 전격적으로 군사위 부주석에 등용했다. 그 의도는 두 명의 군사위 부주석 쉬차이허우와 궈보슝을 통해 후진타오를 감시하고 견제하려는 것이었다.

천포쿵은 이런 상황들을 종합하여 결론 내렸다. 후진타오의 옛 처지를 교훈으로 삼은 시진핑은, 장쩌민의 군부 측근을 모두 제거해야만 자신이 군대를 완전히 장악할 수 있으며, 또 그래야만 중국 원로들이 정치를 좌우하는 중국 최대의 우환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다. 바꾸어 말해, 군부 장악을 위한 투쟁은 자신의 정치와 그 앞날, 그리고 역사의 평가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시진핑은 판단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