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중난(王宗南) 체포, 장몐헝(江绵恒) 조사 임박 (한,중)

1992년 장쩌민은 당정군(党政军)의 권력을 장악한 후, 큰 아들 장몐헝을 급히 귀국시켰다. 이후 장몐헝은 ‘중국제일탐’이라 불리게 되었다. 수년 동안, 장몐헝은 대형 부패 사건에 연루되어 국내외를 경악케 했다.(인터넷 사진)

[www.ntdtv.co.kr 2014-07-29 04:17 AM]

2014년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제2차 감사가 시작되자 장쩌민(江澤民) 근거지인 상하이로부터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7월 28일 상하이 검찰 사이트는 150자도 안 되는 짧은 글로, 광밍(光明)식품 그룹 회장 왕중난(王宗南)이 공금 횡령과 뇌물 수수 혐의로 조사받고 있다는 소식을 올렸다.

중국 언론이 왕중난의 체포를 전한 것은 7월 26일 이었다. 왕중난은 광밍그룹의 전(前) 회장이며, 중공의 전 수괴 장쩌민의 중요 측근이다.

광밍그룹의 홈페이지에 따르면, 장쩌민은 ‘광밍 브랜드의 창시자’이며, 2006년 광밍그룹의 전신인 이민(益民)식품 제1공장의 수석 부공장장을 지냈다. 여론은 이번 광밍그룹 회장 왕중난의 조사에서 장파(江派)가 발을 빼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언론은 왕중난이 황푸구(黄浦区)의 부구청장을 지낸 적이 있으며, 1995년 40세의 나이에 갑자기 사업계에 진출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상하이 내외 연합 종합상사 총경리를 지냈고, 이듬해 초 상사 관할의 자회사 롄화(联华) 마켓 총경리를 겸임했다.

2003년 4월, 바이롄(百联)그룹은 상하이 이바이(上海一百), 롄화(联华), 유이(友宜)와 우즈(物资) 등 4개 기업을 합병하여 창립되었다. 왕중난은 바이롄그룹의 제1대 총재에 취임해 연 매출 1,000억 위안(元)인을 올렸다.

2006년 8월에는 상하이 이민식품 제1공장과 상하이 농공상(그룹) 유한공사, 그리고 상하이시 탕예옌쥬(糖业烟酒)그룹, 진장(锦江) 국제그룹 유한공사를 통합하여 광밍식품 그룹 브랜드를 창설했다. 바이롄그룹 총재이던 왕중난은 광밍식품 그룹의 동사장 겸 당위원회 서기로 자리를 옮겼다. 중국 ‘증권시보(证券时报网)’의 당시 보도에 의하면, 2006년 사업 개편은 장쩌민이 직접 개입한 것이다.

중난하이(中南海), 장쩌민 가족 주시

이번 왕중난(王宗南) 조사는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다. 2013년 11월, 왕중난은 58세의 나이에 광밍 그룹 회장과 당위원회 서기에서 물러나겠다고 선포했다. 정부 당국은 ‘건강의 문제’로 왕중난이 자발적으로 사직을 원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시, 왕중난의 조사 관련 소식들이 떠돌았다.

따지웬시보(大纪元报导)에 따르면, 2013년 11월 중국의 18기 3중전회 이후 장쩌민 권력 집단이 심한 타격을 받았고, 특히 장쩌민 아들인 장몐헝(江绵恒)의 상하이방 권력이 와해에 직면한 것으로 보인다.

1992년 장쩌민은 당정군(党政军)의 권력을 장악한 후, 큰 아들 장몐헝을 급히 귀국시켰다. 이후 장몐헝은 ‘중국제일탐’으로 불리게 되었다. 수년간 장몐헝은 대형 부패 사건에 연루되어 국내외를 경악케 한 것이다.

장몐헝은 상하이의 많은 핵심 경제 영역에 발을 들였는데, 많은 국유기업이 장몐헝에게 사유화 되었다. 1994년 장몐헝은 수백만 위안을 대출받아 상하이시 경제위원회 평가로 1억 위안(元) 가치의 상하이 연합 투자회사를 매입했는데, 실제로 장몐헝의 사유재산이 된 것과 다름없었다. 1999년 장몐헝은 중국 차이나 유니콤과 상하이자동차그룹(上汽集团), 상하이 공항 그룹 등의 이사에 등재되었고, ‘통신 대왕’이라 아부 받았다.

장쩌민은 ‘기업 개혁과 발전’ 이라는 명분하에 장몐헝의 국유기업 사유화를 추진하여 ‘대기업·대그룹으로 발전하여 국민경제의 주력군’으로 성장하게 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장몐헝이 뒤를 봐주는 상하이 롄잉(联影)의료과학기술공사는 사람을 고용해 국외기업 기밀을 끊임없이 빼냈다는 의혹을 받고있다. 이 회사는 작년에는 미국의 과학 연구 성과를 훔쳐 국제적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그 밖에도, 장쩌민 가족이 차이나모바일(中国移动) 부패 사건의 배후 세력이라는 사실이 근래에 끊임없이 밝혀지고 있으며, 사건에 연루된 차이나모바일의 고위직들이 잇달아 낙마하고 있다.

왕리쥔(王立军) 사건 후 장파(江派)는 계속 세력을 잃어가고 있으며, 장쩌민 권력기에 휘어잡았던 ‘군부’와 ‘정법위원회’(政法委), ‘상하이시’라는 3개의 근거지를 전부 빼앗겼다. 18대 이후, 시진핑(习近平)의 비서실장 딩쉐샹(丁薛祥)에게 상하이 정법위도 넘겨주었다. 이외에 장쩌민의 친조카 우즈밍(吴志明)도 중대 사건에 연루돼 당국에 의해 출국 금지 당했다.

장쩌민 관련 사건들이 잇달아 폭로되고, 그의 아들 장몐헝 역시 조사받을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상황은 점점 격화되어가고 있다.

NTD 뉴스 장이니(张旖旎) 종합 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