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이양, 돌연 시진핑에게 충성 전향 (한,중)

[www.ntdtv.co.kr 2014-07-14 05:43 PM]

쉬차이허우가 정식으로 당적을 취소당한 7월 초반, 중공군 4총부, 해공 2포, 7대 군구는 일제히 중공군보에 베이징 당국의 쉬차이허우에 대한 처리를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태도를 표시했다.

일전, 제2포병대 사령원 웨이펑허(魏鳳和)와 정위 장하이양(張海陽)은 연명으로 중공 당 기관지에 ‘시 주석’이 쉬차이허우를 조사 처리한 ‘전략적 안배’를 지지한다는 태도를 표시했으며 아울러 ‘지휘에 복종’하고 “자발적으로 한계를 긋고, 악영향을 제거하며, 주동적으로 1문 10지의 자세로 교훈을 받아들이겠다.”는 등등 맹세를 했다.

2포병대 정위 장하이양은 전에 보시라이 안건에 연루되어 전도에 암운이 드리웠었으나, 지금은 웨이펑허와 손잡고 높은 충성 태도를 표시했다. 이에 대해 국제사회는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연속 충성맹세의 5번째 2포병대

본토 언론에 따르면, 중공 중앙 당교가 꾸리는 ‘학습시보’는 7월 14일 제1면에 2포병대 사령원 웨이펑허와 정위 장하이양이 공동으로 서명한 문장을 실어 쉬차이허우 안건에 대해 “자발적으로 한계를 긋고, 악영향을 제거”하겠다는 태도를 표시했다. 이로써 2포병대는 쉬차이허우 안건을 전후하여 다섯 번째로 정치 태도를 표시했고 이에 대해 국제사회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보도는 이 문장의 전문이 약 5,000자 정도라고 한다. 문장에서는, 2포병대는 당국이 쉬차이허우 안건을 조사 처리한 ‘전략적 안배’에 대해 “단호히 일치하고 지휘에 복종하며, 자발적으로 한계를 긋고 악영향을 제거하며, 1문 10지의 주동적 자세로 교훈을 받아들인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했다. 문장에는 ’시 주석‘ 석자가 16번 나타났고, 또 강렬한 어투로 “중앙군위와 시 주석의 권위를 수호”할 것이라는 입장을 표시했다.

지극히 고급적인 어휘를 사용하여 충성을 맹세한 이 선언은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었다, 국외에 소재하는 둬웨이왕(多維網)은, 중공 당 내부 탐구에 치중하는 신문 ‘학습시보’가 이렇듯 높은 음조로 웨이펑허와 장하이양의 연명 문장을 발표한 것은 ‘심상치 않다’고 분석했다.

이 글이 ‘학습시보’에 발표된 것은 어쩌면 베이징 당국이 2포병대를 전 군의 모범으로 만들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는 또한 “2포병대의 군사적 역량에 대한 중앙의 신임, 특히 시진핑의 두터운 신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2포병대는 중공 전략 미사일 부대이다. 중공 18대 후, 2포병대의 동향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시진핑은 후진타오 손에서 중공 총서기와 중앙 군사위원회 주석이란 두 가지 직무를 넘겨받은 이튿날, 관례를 깨고 단독으로 2포병대 사령원 직위에 갓 오른 웨이펑허를 상장으로 승진시켜 제2 포병부대에 대한 베이징 당국의 중시를 분명히 드러냈다.

이미 미국 학자가 분석한 바 있다. “앞으로의 10년 동안 중국은 계속하여 2포병대의 핵미사일 역량을 강화할 것이다. 지금까지도 그것은 여전히 이 나라의 핵 억지력의 핵심요소였다. 앞으로는 더욱 수명이 긴 전략 핵미사일 확보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다.”

장하이양은 보시라이와의 관계로 전도가 암담했었다

잘 알려진 바대로, 쉬차이허우 처리 전후 몇 달 사이에 중공군 고위층은 연속 4차례 충성을 표시했다. 2014년 3월 7일 18명 군수뇌가 단체로 당국에 충성을 표시했고, 4월 2일 18명 군수뇌가 재차 단체로 충성 표시문을 발표했다. 4월 17일에는 17명 군수뇌가 각기 각 부서를 대표해 중공군보에 군대의 개혁 등에 대한 태도를 표시했고, 7월 2일 4총부, 해공2포, 7대 군구 그리고 무장 경찰이 재차 군보에 쉬차이허우 사건에 대한 태도표시를 일제히 발표했다.

이는 국제사회의 시선에는, 중공 군부 고위층이 시진핑에게 전체적으로 한 차례 사열 받으며 태도를 표시한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근 30년간 중국에서는 보기 드물었다.

7월 14일, 2포병대의 양대 수뇌인 웨이펑허와 장하이양이 ‘학습시보’에 태도 표시 글을 발표한 것은 단일 병종 태도표시의 첫 포문이었다. 그중 2포병대 정위 장하이양은 전도가 암담할 정도로 보시라이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2012년 2월 6일, 충칭시 공안국장 왕리쥔은 당시 충칭시위 서기였던 보시라이와 반목하면서 보의 살인 멸구를 벗어나려고 미국 주재 청두 영사관으로 도망갔다. 이로부터 중난하이에는 정치 대 해일이 촉발되었고, 장쩌민 파인 저우융캉과 보시라이 등이 정변을 밀모하고 생체 장기 적출 등을 자행한 흑막이 국제사회에 폭로됐다, 중공 고위층 각 파별은 사분오열되고 격렬한 힘겨루기를 시작했다.

같은 해 3월 15일, 보시라이는 정직당했다. 4월 10일, 보시라이의 중앙 정치국위원, 중앙 위원 직무도 박탈되었다. 그때, 보시라이와 연관되었던 군부 내 태자당들은 서둘러 줄을 바꾸어 후진타오에게 충성을 표시했으나 2포병대 정위 장하이양은 도리어 보시라이를 한사코 지지하면서 보시라이 반대 충성표시를 하지 않았다고 국제언론이 보도했다.

장하이양은 중공 원로 장전(張震)의 아들로서 시진핑, 보시라이와 마찬가지로 중공 정권의 ‘홍2대’이다. 보시라이가 세력이 강할 때, 류샤오치의 아들인 총병참부 정위 류위안(劉源), 장전의 아들인 제2포병 정위 장하이양, 충칭 경비사령원 주허핑(朱和平) 등은 모두 군부 내의 태자당으로서 보시라이와 관계가 밀접했고 내왕이 잦았다.

2012년 10월, 전 2포병대 사령원 징즈위안(靖志遠)은 이미 퇴직 연령에 이르러 중공 해방군 부총참모장인 중장 웨이펑허가 징즈위안을 대신해 제2포병대 사령원으로 부임했다.

상장 계급의 2포병대 정위 장하이양과 병참부 정위 류위안은 모두 새로운 임기의 중공 중앙군사위에 진입할 가능성은 아주 컸지만, 보시라이와의 연루로 중공 18대 후 두 사람의 전도는 아주 좋지 못할 것으로 국제사회는 보았었다.

지난해 6월 중순, 중공군보는 제1면에 처음으로 2포 사령원 웨이펑허, 정치위원 장하이양이 공동 서명한 평론 문장을 발표했다. 글은 시진핑의 ‘중국몽’을 크게 찬송하면서 “중국몽은 강군몽(強軍夢)을 이끌 것이며, 강군몽은 중국몽을 받들어 줄 것이다.”고 크게 노래하면서 “자발적으로 시 주석의 권위를 수호할”것이라고 명확하게 맹세했다. 이 역시 장하이양이 공개적으로 시진핑에게 투항하여 충성을 표시한 것으로 국제사회는 이해한다.

NTD 뉴스 탕디(唐迪) 종합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