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t Ming/Flickr
[www.ntdtv.co.kr 2014-07-21 11:52 AM]
일전, 중공 군사위 주석 시진핑은 홍콩 주둔부대 사령관 왕샤오쥔(王曉軍)을 광저우 군구 부사령관으로 임명하고 하이난성 군구 사령관 탄번훙(譚本宏)을 홍콩 주둔부대 사령관으로 임명한다는 명령에 정식 서명했다. 이번 홍콩 주둔부대 사령관을 바꾼 것은 중공 전 군사위 부주석 쉬차이허우 및 장쩌민파 인물들의 최후 발악과 매우 긴밀한 관계가 있다.
홍콩 주둔부대 사령관 교체는 본토 언론의 15일 자 소식이다. 중공 홍콩 주둔부대 언론 대변인 류펑셴(劉峰賢)은 주둔부대 사령관 교체에 관한 소식 발표에서, 중공 중앙군위는 홍콩 주둔부대 사령관 왕샤오쥔을 광저우 군구 부사령관으로, 하이난성 군구 사령관 탄번훙을 홍콩 주둔부대 사령관으로 임명한다고 했다. 공개 자료에 따르면 탄은 일찍이 2007년 5월에 홍콩 주둔부대 참모장을 역임했었다고 한다. 2011년 하이난성 군구 사령관에 임직했고 다음 해에 하이난성위 상무위원을 맡았다.
홍콩은 51만 명 ‘7.1’ 대 시위를 막 마쳤는데 이번 시위의 인원수는 역대 최고기록이었다. 백서의 시행에 대해 행동으로 반대한 홍콩 시민들은 각계의 지지를 받았다. 시위가 끝난 지 보름이 되지 않아 홍콩 주둔부대 사령관이 즉각 교체됐는데 그 배후의 원인은 국제사회의 시선을 끌었다.
쉬차이허우의 낙마에 장쩌민 놀라
‘7.1’ 전날 중공이 국내외에 공개한 소식은 국제사회의 관심을 극도로 휘어잡았다. 바로 10년 동안 중공군 인사 통제권을 실질적으로 장악했던 군사위 부주석 쉬차이허우가 연행, 조사된다는 것이었다. 베이징의 소식통이 ‘신기원주간’에 알려온 데 따르면, 6월 30일 저녁, 시진핑은 쉬차이허우를 체포했고 이튿날 전 세계가 모두 이 일을 입에 담자 장쩌민은 몹시 놀랐다. 그는 7월 2일 즉시 전용 열차로 베이징에 가서 시진핑을 만나자고 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한다.
2012년 2월, 전 충칭시 공안국장 왕리쥔이 미 영사관으로 도피하여 저우융캉, 보시라이 두 사람이 다년간 밀모해 온 정변 계획을 폭로했다. 이 정변 세력은 탐오부패와 독직 외에 두 가지 핵심 죄행을 저질렀다. 그 하나는 정변을 일으켜 현 정권을 뒤엎는 것이고, 둘째로는 생체에서 장기를 적출해 불법적인 폭리를 챙긴 것이다. 쉬차이허우는 바로 보, 저우 정변 집단을 지원하는 군부 거물인 것이다.
중공 병참부 부부장 구쥔산이 낙마하자, 그 시기 중공 군사위 부주석인 쉬차이허우, 궈버슝은 몹시 놀랐다, 다음번 체포 대상이 될까 봐 두려워 장쩌민에게 구원을 청했다. 당시는 중공 18대가 열리기 직전이었는데, 장은 부하들을 다독이면서 후진타오와 이미 “구(穀)에만 국한하고 더는 위로 추궁” 하지 않기로 인식을 같이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와 후는 중공 18대에서 정치 연맹을 맺었고, 후가 결정한 구쥔산 조사 이후 시진핑은 쉬차이허우의 조사도 결정했고 후진타오는 이를 지지했다.
장쩌민이 용서를 빌었으나 거절당하다
시진핑은 중공 총서기가 된 후, 몇 번이나 저우융캉, 쩡칭훙이 파견한 특무의 손에 목숨을 잃을 뻔했고, 왕치산마저도 몇 번이나 중기위 순시 길에서 돌아오지 못할 뻔했다.
2014년, 중공 양회 전, 장쩌민은 시진핑에게 부패 척결을 너무 크게 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뜻인즉슨 그의 측근을 건드리지 말라고 시에게 경고한 것이다. 4월 1일, 영국 ‘파이낸셜 타임즈’에 따르면, 장쩌민은 확실히 시진핑에게 압력을 가하면서 수십 년래 가장 단호한 ‘부패척결운동’을 ‘제어하고 늦출 것’을 요구했다. 4월, 한 홍콩언론은 더 깊이 보도했다. 장쩌민은 체면도 불구하고 사적인 입장에서 왕치산에게 편지를 써 그의 반부패 척결을 긴급히 ‘정지’ 시켜달라고 부탁했지만, 장의 구걸은 왕에게 거절당했다는 것이다.
이 기간은 바로 3월 15일 시진핑 진영에서 군사 규율 위원회가 정식으로 쉬차이허우를 내사하던 시기였다. 장이 대신해 사정을 구걸해 보려 한 자는 쉬차이허우 뿐만이 아니라 저우융캉과 쩡칭훙 및 장의 큰아들 장몐헝 등이었다.
장파의 반격은 시진핑을 격노케 해
시진핑이 부임한 후 ‘반부패 대 연극’은 갈수록 강해졌고 장파의 반격도 줄곧 계속되었다. 장쩌민, 쩡칭훙 등은 국내외에서 이용할 수 있는 모든 매체를 다 동원하여 시진핑 반대 보도를 공개적으로 실었다. 시진핑, 후진타오, 원자바오의 추문을 만들어내 공격했으나 결과적으로 시-후 연맹의 더욱 큰 반격을 불러와 저우융캉이 오늘까지 수감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쩡칭훙마저 갇히게 했다고 해외 매체는 보도했다.
장쩌민 집단은 배후 계략으로 올해 6월 10일 홍콩에서 백서를 내놓아 홍콩정세를 자극하였다. 대규모의 폭력 충돌을 빚어내고 홍콩 중환 점령 운동을 폭력 탄압하는 장면이 나타나기를 바란 것이다. 바로 홍콩에서 ‘6.4’와 비슷한 유혈 참사를 빚어내 혼란 국면을 만들고 시진핑을 핍박하여 하야케 하려 했다고 ‘따지웬 사이트’는 보도했다.
이에 대해 시진핑은 베이징을 떠나 한국을 방문하기 전야, 중공 정치국 회의에서 무섭게 격노했다. 여기서 시진핑은 쉬차이허우에 관한 처리를 통보했고 아울러 장파 상무위원급 군부 세력들에게 경고했다. 시는 쉬차이허우 처리를 마치자 즉각 중공 홍콩 주둔부대 사령관을 교체했다
오늘, 장몐헝의 사건도 조사 중이며 또 떠도는 소문으로 장쩌민의 정부 쑹주잉(宋祖英)도 이미 조사를 당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중공 당 언론의 보도 중 장쩌민의 매국, 탐오 음란에 대한 보도가 적지 않은데 최종적인 큰 호랑이가 누구인지는 갈수록 분명해 지고 있다.
NTD뉴스 구싱인(顧星音) 종합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