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쩌민 조사 시동 거는 시진핑 (한,중)

[www.ntdtv.co.kr 2014-07-31 10:25 AM]

중공 전 총서기 장쩌민이 전략적으로 발탁한 전 정치국 상무위원 저우융캉이 입건되었다. 국내외 여론은 한때 불가일세(不可一世)였던 ‘정법 황제’의 낙마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가 낙마하기 전, 장쩌민과 쩡칭훙이 그에 대한 조사를 저지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소식이 계속 들려왔다. 저우융캉이 낙마하자, 국제사회에서는 베이징 당국에 계속해서 저우융캉 배후의 ‘더 큰 대호’를 조사하라고 독촉을 보내고 있다. 며칠 전 베이징 고위 인물이 NTD에 제보한 바로는 여러 가지 이유로 시진핑은 근일 장쩌민 조사에 시동을 걸었는바, 저우융캉, 쉬차이허우 등 장파 인물들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장쩌민을 크게 믿는 장파들이 끊임없는 소란과 난동을 부린 것이 그중 가장 큰 이유라는 것이다.

베이징 소식 : 시진핑이 장쩌민 조사에 시동을 걸었다

널리 알려진 대로, 저우융캉은 장쩌민의 심복부하이자 최고의 보검이었다. 따라서 저우융캉 체포는 장쩌민 일파 세력에게는 매우 심각한 타격이었다. 동시에 이는 장쩌민과 쩡칭훙의 앞을 막아주던 방어벽이 무너져 내림을 의미했다. 국제사회에서는 베이징 당국이 장파 핵심인물들을 소탕할 것이고 심지어 장쩌민을 직접 공격할 것이라는 예측이 순식간에 정설이 되었다.

며칠 전, 베이징 고위 소식통이 NTD에 제보한 바에 따르면, 베이징 당국이 연속적으로 보시라이, 쉬차이허우, 저우융캉 등 장쩌민이 전략적으로 발탁한 일련의 주요 인물들을 끌어내리고 장파의 이익에 손을 대자, 장파는 모든 수단을 강구하여 제지와 반격에 나서면서 심지어 언론을 통해 공개적으로 싸움을 걸기까지 했다. 바로 이 때문에 시진핑은 장쩌민에 대한 조사를 서둘러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베이징 소식통은 ‘장파 세력은 일찍부터 시진핑 암살계획을 세웠을 정도로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으로 투쟁을 벌였다. 만일 시진핑이 철저한 조사를 게을리하면 일신상에 화가 미칠 것’이라 지적했다.

이에 앞서, 국제사회는 보편적으로 저우융캉 사안의 발표가 늦어지는 주원인이 장쩌민과 쩡칭훙이 저우를 적극적으로 보호하면서 시진핑의 호랑이 사냥을 교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7월 29일 당국이 저우 조사를 공표하던 날, 유명 시사평론가 장톈량(章天亮)은 즉시 웨이보에 “저우융캉 이후, 호랑이 사냥은 크게 급물살을 탈 것”이라는 제목으로 저우융캉 낙마가 중공 정가에 줄 충격과 영향을 분석했다.

평론은 저우는 정치국 상무위원을 지내면서 국가적 영도자였고, ‘안정유지’를 최고의 가치로 여겼으며, 처음에 무장경찰을, 이어서 공검법(공안기관, 검찰원, 인민법원)을 장악했고 자금(經費) 운용 실력이 후진타오를 능가했었다. 그리고 저우는 보시라이의 모반 계획에 참여한 관건적 인물이었기 때문에 저우융캉 타도는 장쩌민과 쩡칭훙의 보호벽 붕괴와도 같았다고 지적했다.

문장은 분석했다. “보시라이가 쓰러질 때, 장쩌민과 쩡칭훙, 쉬차이허우는 그다지 위기감을 느끼지 않았다. 졸을 버려 차를 보호하며 시진핑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장과 쩡은 보시라이를 버린 것이 그해 천량위(陈良宇)를 버린 것처럼 그다지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나 저우에 손을 대자 장과 쩡은 즉시 필사의 저항을 시작했다. 우선 이것은 정치국 상무위원을 조사하는 첫 번째 전례가 될 것이고, 둘째로 저우는 파룬궁 박해의 전반적, 핵심적 증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저우융캉에게 모험을 시켜 자신들의 비호 하에서 정변을 획책하게 종용한 것은 바로 파룬궁 박해 과정에서 범한 반인류적 죄업을 은폐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렇기 때문에 저우를 조사하면 장과 쩡의 모반죄와 반인류죄가 시진핑에게 낱낱이 장악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저우융캉 사안이 지지부진했었던 것은 “시진핑과 장쩌민 사이의 전략적 대결” 탓이었다.

장톈량은 저우융캉 사안이 공표된 것은 장과 쩡의 최후 방어선이 무너졌음을 뜻하며 시진핑 진영의 전략에 대한 저항력이 매우 감소하여 당국의 사냥 추진 속도에 큰 가속이 붙을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호랑이 사냥이 장과 쩡을 건드리는 시점이 되면 저우융캉처럼 지지부진한 일은 없다는 것이다.

중공 대변언론은 저우융캉 배후의 더 큰 대호를 공격

실제로 중국 본토의 관영언론들은 최근 빈번하게 저우융캉 배후의 더 큰 대호를 잡아야 한다는 여론몰이를 하면서 장쩌민을 그 대상으로 지목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저우융캉이 공개적으로 낙마한 7월 29일, 중공 대변언론 ‘인민망’은 ‘대호 저우융캉 타도는 반부패의 끝이 아니다’라는 평론에서 저우 낙마 후 당국이 더 큰 작업을 할 수도 있음을 암시했다.

7월 2일, 다른 대변언론 ‘신화망’은 ‘프랑스 검찰은 왜 전직 대통령을 감히 조사하나?’라는 제목의 웨이보 문장으로 공개적 질문을 던졌다. “이 탐관들을 배후에서 키운 자는 누구인가, 당초에 그들을 발탁한 것은 고의인가, 아니면 모종의 목적 때문인가, 아니면 개인의 불찰인가?” 문장은 또한 당국이 반부패 추진에서 사르코지 전 대통령급의 다른 ‘대호’를 조사하는 기개를 가져야 할 것이라 암시했다.

7월 29일 ‘신화망’은 또다시 평론을 발표했다. “이런 자들의 인품을 보라, 어떻게 그들이 당에 들어와 그런 고위층까지 오를 수 있었는가? 라는 소리가 귀가 아플 정도로 많다.” 국제사회는 이 글이 간접적으로 독자들에게 ‘대호 저우융캉이 어떻게 중공 최고위층에 ‘섞여’ 들 수 있었는가에 관심을 유도한다고 해석했다.

광밍(光明) 동사장 왕중난(王宗南) 체포, 장쩌민 일파 박멸의 서막인가?

본토 언론 보도에 따르면 7월 26일, 상하이 광밍그룹 전 동사장 왕중난이 공금유용과 수뢰 혐의로 연행되었고 이어 입건 조사받는다고 공표되었다.

공개 정보에 따르면, 광밍그룹의 전신은 상하이 이민(益民) 식품 제1공장이고 장쩌민은 이민식품 제1공장 수석 부공장장이었다. 따라서 광밍그룹공사 인터넷 홈페이지는 장쩌민을 ‘광밍 브랜드 창립자’라고 소개하고 있다.

2006년 8월, 장쩌민의 직접 관여 하에 당국은 상하이 이민식품1공장, 상하이 농공상 (그룹) 유한공사, 상하이시 탕예옌쥬(糖业烟酒) 그룹, 진장(锦江) 국제 그룹 유한공사 등을 합병하여 광밍 식품 그룹을 만들었다. 바이롄(百联) 그룹 총재인 왕중난이 광밍 식품그룹 동사장 겸 당위원회 서기로 취임했다. (중국 ‘증권시보망’ 보도)

이에 근거를 두고, 독립 중국어 언론 ‘따지웬’은 분석가의 말을 인용하여 왕중난이 돌연 조사받는 것은 장쩌민 처리의 전조며, ‘중국제일 탐(中国第一贪)’이라 불리는 장쩌민의 아들 장몐헝 조사 임박을 예고한다고 썼다.

장쩌민 일가의 국외 자산에 손댈 수도

장쩌민이 총서기로 재임한 13년간 중공 관가의 부패는 노골적으로 만연하여 장을 필두로 탐오하지 않는 관원이 없었다. 장쩌민은 아들 장몐헝에게 “소리 없이 큰 재산을 모으라”고 격려했다. 장몐헝은 장쩌민의 권세를 빌어 탐오수뢰, 공금횡령으로 짧은 몇 년 사이에 방대한 통신왕국을 세우는 동시, 상하이의 거의 모든 분야를 석권했다. 그러자 국제사회에서는 그를 ‘중국제일탐’이라 부르게 되었다.

‘차이나 어페어(中国事务)’는 “장쩌민은 스위스 은행에 3억 5천만 달러의 비밀 계좌를 가지고 있고 인도네시아 발리섬에 호화주택 한 채를 사들였다. 1990년 이것을 약 1천만 달러에 전 외교부장 탕자쉬안(唐家璇)을 시켜 처분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전 중국은행 홍콩총재 류진바오(刘金宝)는 2005년 탐오죄로 사형집행유예형을 받았다. 홍콩 ‘개방’ 잡지는 국제결제은행이 2002년 12월 주인 없는 20억 달러가 중국에서 흘러나온 것을 포착했다. 류진바오는 옥중에서 이는 장쩌민이 16대 전야에 훗날을 대비해 국외에 도피시킨 것이라 폭로했다. 류진바오는 일찍이 중국은행 상하이 지점 지점장을 역임한 바 있었다.

중공 17대 전야, 중공 재정부장 진런칭(金人庆)이 갑자기 입건되었다. 조사에 따르면 진런칭과 장쩌민은 이전 몇 년 동안 국고의 국외 유출에 간여했다. 당시 후진타오와 원자바오는 없어진 돈 1천억 위안의 향방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던 중이었다. 장쩌민은 거액의 자금을 파룬궁 탄압에 썼다. 당시 주룽지 총리의 비준과 서명도 없이 사용된 돈은 장쩌민이 진런칭으로부터 직접 이체받은 것이었다.

시진핑이 집권한 후, 당국은 반부패를 수단으로 장쩌민파 관원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했다. 동시에 계속해서 국외 은닉자산 조사도 추진했다. 이는 아마도 방대한 국외 자산을 소유한 장쩌민, 쩡칭훙, 저우융캉 등의 가족들을 추적 조사하기 위한 준비일 수 있다.

7월 28일, 한 중앙 기율위원회 관원이 밝힌 바에 따르면, 중기위는 국외 은닉자산과 도피자를 전문으로 추적하는 국제 합작기관 하나를 세웠다. 중기위의 이런 대대적 활동은 ‘제1탐’ 장쩌민 가족의 국외 자산을 건드리기 위한 것일 수 있다.

저우융캉은 시진핑 암살을 획책

이 외에도, 예전의 국외언론 보도에 따르면, 작년 8월 초, 베이다이허 회의에서 저우융캉은 중공 은퇴 원로들의 공격을 받았다. 이 회의를 전후하여 저우융캉은 최소 두 차례 시진핑을 암살하려 했다. 한번은 회의실에 시한폭탄을 설치했고, 한번은 시진핑이 베이징 301호 병원에 신체검사를 받으러 갔을 때 독약 주사를 놓으려 했었다. 이후 시진핑은 한때 서산군사 지휘부로 옮겨갔고 베이다이허 회의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중공 18대 전야에도 의문의 실종이 있었다. 이 암살을 실행에 옮긴 것은 저우의 비서 겸 경호원인 탄훙(谭红)이었다.

7월 30일, 시사평론가 리톈샤오(李天笑)는 ‘저우융캉 그물에 갇혀 중국정국 중대 전환-저우융캉 낙마가 중국 정국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제목의 평론을 발표했다.

리톈샤오는 문장에서 분석했다. ‘저우융캉이 체포되었다는 발표는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베이징 당국의 호랑이 사냥이 상무위원급까지 올라간 것이다. (이는) “장파의 핵심 범죄자들을 전면적으로 소탕하겠다는 신호”이며, “상무위원이라는 장쩌민의 최후 방어선이 앞으로 점차 빠르게 무너져 내릴 것을 뜻하며, 장파의 대호들이 장차 하나하나 체포되어 법정에 서게 될 것을 뜻한다.”

평론은 시진핑의 호랑이 사냥의 궤적과 전략을 분석했다. “시진핑은 저우융캉을 척결한 방법 그대로 장쩌민을 척결할 것이다. 즉 외곽에서 중심을 파고드는 방법으로 대호에서 시작하여 노호(老虎)에 이르는, 중요 범인에서 시작하여 주범에 이르는 방법이다. 이것이 범죄 증거를 수집하는 과정인 만큼, 역시 범죄집단을 와해시켜 가면서 최후에는 범죄두목을 체포하는 연속된 행보일 것이다.”

NTD 뉴스 탕디(唐迪) 종합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