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과 왕치산 암살 미수 내막(한,중)

[www.ntdtv.co.kr 2014-07-29 06:29 AM]

전 정치국 상무위원 저우융캉보다 먼저, 전 군사위 부주석 쉬차이허우가 당적을 박탈당하고 낙마한 것은 여론의 열띤 토론을 불러일으켰다. 국외 언론의 폭로에 따르면, 중공 고위층의 부패는 너무 창궐하여 총서기 시진핑과 기율검사위원회 서기 왕치산에 대하여 과감한 반격을 가할 뿐만 아니라, 저우융캉과 쉬차이허우 처리에 대해서도 압력을 가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쉬차이허우를 반드시 처리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고 한다.

중공 장파의 거두 저우융캉이 지난해 말에 ‘잡혔다’는 소문이 부단히 떠돌았고, 올해 3월 양회 기간에 중공 관원들의 귀띔으로 국제사회는 저우융캉 안건에 대한 발표가 곧 있을 것으로 믿어왔다. 그러나 군부의 ‘큰 호랑이’ 쉬차이허우가 6월 30일 중공 당적을 박탈당하자 국제사회는 너무도 뜻밖이었다. 그 후 쉬차이허우 낙마의 내막이 계속 드러나고 있다.

근일, 국외 언론은 “쉬차이허우 체포, 군사위 부주석 어리둥절”이라는 글에서, 중공 고위층 부패 집단은 사실 너무 창궐해, 중난하이 새 주인은 부득불 손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처음에 시진핑은 저우융캉과 쉬차이허우를 그리 엄하게 처리할 생각이 없었는데 오히려 아주 큰 반격을 당하게 됐다. 이들은 막후에서 부지런히 활동하며 시진핑과 왕치산에게 많은 압력을 가했고, 시진핑과 왕치산이 그들에 대해 반격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그냥 놔두면 상대방들은 더욱 기고만장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시진핑과 왕치산이 여기에서 양보한다면 군부 전체가 뒤집어질 것이고 심지어 상대방에게 살해당할 수 있었다고 보도는 진단했다.

쉬차이허우는 장쩌민이 “군에서 가장 총애하는 사람”

쉬차이허우는 중공 전 총서기 장쩌민이 “군에서 가장 총애하는 사람”이며, 장쩌민이 직접 발탁한 사람이고, 장파 탐오부패의 군부 대표다. 언론은 쉬차이허우가 장악한 중공군 총 정치부는 부수입이 가장 짭짤한 최고 보직 부서로서, 공개적으로 광고하면서 군 보직과 계급을 판매할 정도로 부패했다고 일찍부터 폭로했다.

보도에 따르면, 쉬차이허우는 보시라이, 저우융캉 등과 아주 깊은 이익 거래가 있었고, 그들의 정변에도 참여했다고 한다. 2012년 2월, 충칭 공안국 국장이던 왕리쥔은 갑자기 미 영사관으로 탈출하여, 자신과 보시라이가 반목했다고 알리고, 여러 해 동안 준비하여 2014년에 행동에 옮기기로 했던 정변 계획을 폭로했다.

쉬차이허우, 저우융캉 체포에 장파가 반격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는 미국 워싱턴에 본부를 둔 비영리 기구다. 협회는 2014년 1월 21일, 국제 사회에 경악스러운 일을 폭로했다. “적어도 5명의 중공 중앙 정치국 전임 현임 상무위원의 가족이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와 쿡제도(Cook Islands) 등 역외금융 중심지에 기업을 갖고 있다. 그 상무위원들은 현임 중공 국가 주석 시진핑, 중공 국무원 전 총리 원자바오와 리펑,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 그리고 사망한 중공 지도자 덩샤오핑 등”이라는 것이다.

소문이 전해지자 국제사회는 이는 횡령, 수뢰한 거액의 재산을 국외에 숨겼다는 말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 명단 속에는 유독 중국에서 탐오 부패가 극심한 장쩌민 집단의 핵심 성원인 장쩌민, 쩡칭훙, 저우융캉, 쉬차이허우, 마이칭린 등이 없다.

이로 인해 당시 다른 언론들은 이 폭로는 장쩌민 집단의 이인자 쩡칭훙이 배후에서 국제사회에 은밀히 자금을 주면서 획책한 것이라고 잇달아 폭로했다.

이보다 앞서 ‘신기원 주간’은 2014년 3월 중공 양회 전, 장쩌민은 시진핑에게 부패척결 보조를 너무 빨리 밟지 말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보도했다. 그 뜻인즉 그의 측근을 건드리지 말라고 시진핑에 경고한 것이다. 4월 1일,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도 장쩌민은 확실히 시진핑에게 압력을 가하면서, 현 지도층은 수십 년래 가장 지독한 반부패운동의 ‘고삐를 늦추어야 할 것’이라 요구했다고 보도하여 이를 뒷받침 했다. 4월 홍콩 언론은 심지어 ‘장쩌민은 체면도 불구하고 직접 왕치산에게 개인 서신을 보내 그의 반부패가 급 ‘브레이크’를 밟기를 바란다고 했다. 하지만 장의 애걸은 왕치산에게 무시당했다.‘고 폭로했다.

그 후 왕치산이 시진핑과 반부패 활동 중, 살신지화를 당할 뻔했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왕치산은 하마터면 암살당할 뻔

홍콩 ‘동향’ 지 5월호 보도를 따르면, 2013년 8월 하순, 왕치산은 장시 난창 등지에서 지도집단 청렴 정치 건설사업을 시찰했다. 그날 밤 그가 투숙한 장시성 간이 숙박소 제5원(第五院)에서 전화, 텔레비전, 조명등이 갑자기 50여 분간 중단됐다. 정전 중 ‘탄원인’ 두 명이 제5원에 잠입해 왕치산에게 ‘탄원장’을 건네주려 하다 왕치산의 수행 경호원에게 체포됐다고 한다.

보도를 따르면, 위의 탄원인 두 명은 박해받은 억울한 민중이 아니라 공안 계통에서 면직당한 경관으로서 조사해 보니 살수로 고용 당한 자들이었다. 두 사람은 잡힐 때 자살하여 증거를 없애려 했다고 한다.

이 밖에 올해 음력설 전야에 중공 중기위 부서기이며, 중앙서기처 서기인 자오훙주(趙洪祝)와 왕치산 등은 또 극독인 사이안화칼륨(청산가리)을 싸 넣은 연하장을 받았다.

시진핑 암살당할 뻔, 수행 경호원 바꾸다

장쩌민파 앞잡이인 보시라이 사건 폭로 후 국외 언론은 중난하이 측근 소식통을 인용하여 추가로 비사를 폭로했다. 2012년 7월 하순 베이다이허 회의 전후, 저우융캉은 적어도 두 번 시진핑을 암살하려 했다는 것이다. 한 번은 회의실에 시한폭탄을 놓은 것이고, 다른 한 번은 시진핑이 301병원에서 신체검사를 할 때 독약을 주사하려 한 것이다.

2012년 9월, 시진핑은 모두의 시야에서 두 주일간 ‘사라진’ 적이 있는데 소식통에 따르면 시가 홍 2대 모임에 참가했을 때 날아오는 의자에 잔등을 맞아 부상당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시진핑은 중공 18대 1중 전회에서 총서기에 부임한 후 즉시 수행 경호원을 바꿨다. 관례와 달리, 현 중공중앙 경위국 체제를 무시하고 원래 있던 신변 경위대를 전부 바꾸어버렸다. 중앙 군사위를 시켜 ‘군대’ 현역 특과병 중에서 다시 선발해 중국 공산당 중앙 위원회 사무처(中辦) 주임 겸 중앙 경위국 정위 리잔수(栗戰書)의 직접 관할하에 두었다. 현임 경위국장은 시진핑 수행 경호원을 배치할 권리가 없어졌다.

‘신기원 주간’ 386호는, 6월 30일 시진핑이 쉬차이허우를 체포하자 이튿날 전 세계가 떠들썩했고 장쩌민은 몹시 놀라 그 다음 날인 7월 2일, 전용 열차를 타고 베이징으로 갔다고 알렸다. 보도는 또 시진핑은 장쩌민을 만나 주지 않았고, 국제사회는 중공 당국이 다음 한걸음에 저우융캉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해 계속 주목하고 있다고 마무리했다.

NTD뉴스 카이신(凯欣) 종합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