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호랑이잡이’ 최종 목표(한,중)

[www.ntdtv.co.kr 2014-07-14 11:53 AM]

최근, 중공이 퇴직 고관을 비밀리에 구금 조사한다는 소식이 해외에 급속히 전해지고 있다. ‘궈버슝(郭伯雄)에게 일이 생겼다’, ‘마이칭린(賈慶林)이 잡혔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를 이어 중공 전 국가 부주석 쩡칭훙(曾慶紅)이 잡혀 톈진에서 비밀조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이 해외에 흘렀다. 그야말로 “산에 비가 오려는지 누각에 바람이 가득하네.”란 기분이 든다. 막 낙마한 쉬차이허우는 장쩌민이 ‘군에서 가장 총애하는 사람’으로 국제사회에 알려져 있다. 여기서 장쩌민의 ‘심복’, ‘참모’로 불리는 쩡칭훙이 조사당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베이징 당국의 ‘호랑이잡이’의 최종 목표가 누구인지는 일목요연하다.

쩡칭훙이 비밀 구속 조사받는 중이라는 소문

7월 12일 ‘따지웬’은, 중앙 기율검사 위원회(이하 중기위)의 측근 소식통을 인용하여, 장쩌민 집단의 이인자이자 전 중공 국가 부주석인 쩡칭훙이 지금 톈진에 갇혀 중기위의 비밀조사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쩡칭훙은 장쩌민 집단의 이인자로서 장쩌민 일파의 범죄 증거를 다수 가지고 있다. 쩡칭훙의 체포는 장쩌민 집단 숙청이 이미 최고위층을 건드리고 있으며, 실질적인 단계로 진입했음을 의미한다고 보도는 밝혔다.

쩡칭훙은 줄곧 장쩌민의 수행 ‘참모’로 간주됐다. 1980년대 장쩌민이 상하이에서 집정할 때부터 쩡칭훙은 장쩌민의 권력 투쟁에서 크고 작은 각종 음모를 획책했다.

보도는, 지난해 18대 이전, 중공 정치국 전 상무위원 저우융캉은 장쩌민 집단의 핵심인물로서 실권을 쥐고 있었지만, 저우융캉이 연금된 후 실권은 쩡칭훙 손으로 옮겨갔다고 설명했다. 또, 쩡칭훙은 저우융캉과 보시라이에게 ‘정변’을 수단으로 시진핑의 중공 최고 권력을 탈취하라고 획책한 막후 흑수라고 지적했다.

올해 5월, 해외 언론은 쩡칭훙 가족의 탐오 부패 추문을 또다시 크게 다루었다. 5월 14일, 쩡칭훙은 상하이 서기 한정(韓正) 및 장쩌민의 아들 장몐헝(江綿恒)과 함께 상하이 한톈헝(韓天衡) 미술관을 참관했는데 이는 악소문을 피하기 위해서인 것 같았다. 하지만 중공 대변 언론은 쩡칭훙의 활동에 대하여 아무런 정식 보도도 하지 않았다.

당시, 워싱턴의 중국문제 전문가인 스장산(石藏山)은 평론에서, 쩡칭훙의 이번 외출이 안배된 것이든 아니면 장쩌민 집단의 고의적인 조작이든 모두 쩡칭훙의 처지가 심상치 않음을 증명한 것이라고 말했다.

5월 하순경에 이르러 또 쩡칭훙이 거주지에서 감시받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소식에 따르면, 쩡의 당시 처지는 보시라이 사건 발생 후, ‘3.19’ 정변 이후의 저우융캉과 비슷하게 내부 감시를 받는 상태라서 실질적인 거주 감시 상태와 다를 바 없었다.

쉬차이허우가 체포와 군부 대 사찰

주목할 만한 것은, 중공 중앙 군사위 부주석 쉬차이허우가 낙마하자 중공군보(中共軍報)는 베이징 당국이 쉬차이허우를 체포하기 전, 선양 군구에서 한 차례 ‘대대적 물갈이(大換血)’ 행사를 벌였다고 느닷없는 폭로 기사를 썼다는 점이다.

중공군보의 보도에 따르면, 올해 6월 하순, 선양 군구는 예하 사단 단위 민감 부서의 직원에 대해 한 차례 보직 대 이동을 벌였다고 한다. 이번에 수장과 직원이 이동한 민감 부서에는, 사단급 기관, 재무, 물자를 관리하는 직공(直工)과, 간부과, 재무처, 영방처, 그리고 관련 업무부서 등 80개 부서와, 단급기관의 업무경비, 간부조정, 공정건설, 재무관리 등에 연관된 8개 부서가 포함됐다고 한다.

보도는, ‘부서 간 이동을 안정적으로 실시하기 위해 연근부(聯勤部)는 10개 직속 간부휴게소(幹休所)에서 시범적으로 조건에 부합된 6명 회계를 전근시켰다. 그런 후, “소속 사단 부서단위의 민감 부서 직원에 대해 전면적 검사를 실시하여 항목마다 등록하고 부서마다 대조 확인하며, 사람마다 심사하여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한 부서도 놓치지 않았다.” 6월 말까지 재직 기간이 만 3년이 넘는 170명의 현직 장교들이 전근되었다.’고 전했다.

군부 측에서는 대외에, ‘사람, 돈, 물자의 관리부서는 민감 부서로서 부대 건설의 중요한 부위인 만큼 ‘4풍(四風)’ 문제도 쉽게 발생할 수 있다. 이번 대규모 부서 전환은 이런 ‘민감부서’의 부패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서’라고 선전했다. 하지만 국외 여론은, 이번 행동의 진실한 의도는 쉬차이허우의 공개 처리를 위해 선양 군구에 진행한 한 차례 대규모 인사 이동이라고 했다. (4풍 : 2013년 시진핑 주석은 관료주의, 형식주의, 향락주의, 사치풍조를 이른바 ‘사풍(四風)’으로 규정)

쉬차이허우는 10년 동안 군의 인사 대권을 장악하였으므로 군 내부에 세력이 아주 많다. 선양 군구는 또 쉬차이허우의 오랜 소굴이기도 하다. 때문에 쉬차이허우를 정식 처리하기 전 당국은 먼저 선양 군구의 각 중요 부서 인사이동을 단행하여 과거 쉬차이허우가 선양 군구에 오랫동안 심어놓은 인맥 네트워크를 와해하고, 원래의 이익 구조를 타파하며, 주요 부서를 ‘자기 사람’ 손아귀에 확실히 장악시킴으로써 군 내부의 쉬차이허우 파벌이 집결하여 소란을 피우는 것을 예방하려 한 것이라고 한 여론은 말했다.

이에 앞서 본토 언론이 흘린 정보에 따르면, 랴오닝 와팡뎬(瓦房店)에서 출생한 쉬차이허우는 일찍 선양군구 16집단군 정치부 주임과 정위를 역임했다. 바로 와팡뎬의 고향 친구 위융보(於永波)가 그의 승진 배경이었다.

1985년, 위융버는 난징 군구 정치부 주임으로 있을 때 상하이 시위서기로 있던 장쩌민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장쩌민이 중공 총서기로 승진한 후 위융버는 1992년 총 정치부 부주임으로 탁발됐다. 같은 해 11월, 쉬차이허우는 위융버에 의해 총 정치부에서 주임보좌관 겸 해방군보사 사장으로 발탁됐고, 이후 또 부주임으로 승진했으며, 그리고 지난군구에서 정위로 임직했다.

그 후, 쉬차이허우는 승진을 멈추지 않고 1999년부터 중앙 군사위 위원, 총 정치부 상무 부주임, 중앙 군사위 기율 검사 위원회 서기, 총 정치부 4부 주임, 중공중앙 서기처 서기, 중앙 군사위 부주석 등 직무를 역임하여 장쩌민의 군대 내 유력 간부가 됐다.

그러므로 쉬차이허우가 베이징 당국에 의해 공개적으로 낙마한 것은 장쩌민의 군부 내 한쪽 ‘팔’이 부러진 것이라고 국제사회는 보고 있다.

오늘, 해외에는 또 장쩌민의 멍청이 참모 쩡칭훙도 당국에 비밀 수감돼 조사를 받고 있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다. 한 분석가는, 이 소문이 사실이라면 장쩌민의 발톱과 이빨(보시라이, 저우융캉). 수족(쉬차이허우)과 심복(쩡칭훙)은 전부 폐물이 되었고 장쩌민 본인도 체포될 날이 머지않았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