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저우융캉에 앞서 쉬차이허우부터 손댄 이유(한,중)

[www.ntdtv.co.kr 2014-07-02 03:03 AM]

6월 30일, 중공은 전 중공 중앙 군사위 부주석 쉬차이허우(徐才厚)를 ‘엄중한 규율 위반’으로 당적을 박탈하고 검찰로 송치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국제사회의 예상을 크게 벗어났다.

2013년 12월 6일, 전 중공 정치국 상무위원 “저우융캉, 중국 반부패에 쓰러진 큰 호랑이”라는 홍콩 ‘애플데일리’ 보도와 함께, 저우융캉의 부하와 가족도 줄줄이 체포되는 모습을 본 국제사회는, 저우융캉은 이미 “한 마리 죽은 호랑이”가 되었고, 이제 관을 열고 모습을 드러내는 일만 남았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6월의 마지막 날, 중공 건당일(建黨日) 전야에 갑자기 쉬차이허우(徐才厚)가 중공의 버림을 받고 제단 위에 올려졌다.

NTD 방송국은 시사 평론가를 만나 시진핑 총서기가 왜 쉬차이허우를 먼저 버리게 됐는가에 대해 여러 각도로 살펴보았다.

시사평론가 란수(蘭述)는, 시진핑이 쉬차이허우를 먼저 처벌한 데는 두 가지 원인이 있다고 분석했다. 첫째, 중공은 지금 첨예한 사회 모순에 직면한바, 중국 민중과의 모순을 직접 해결하는 대신에 작은 탐관뿐 아니라 큰 호랑이도 잡아서 부패 척결의 명분으로 민중의 분노를 완화하려는 것이다. 둘째, 부패 척결의 길에서 장애물을 제거하여 통치 행로를 탄탄히 하려는 것이다.

[란수]
“저우융캉, 쉬차이허우 등은 장쩌민 치하의 최대 수혜자로 모두 고관에 올랐으며 중국인의 불만이 집중된 사람입니다. 그들을 잡으면 중국 사회에 일정한 위로효과를 줄 수 있고, 다음 단계의 부패 척결이 더 쉬워질 것입니다.”

유명 정치 평론가 우판(伍凡) 교수는 NTD와의 인터뷰에서, 시진핑이 쉬차이허우를 먼저 손 쓴 것은 안전성을 고려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우판 교수는 “그(시진핑)는 군대를 평정하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아 군대가 그의 말을 듣지 않으면, 시진핑은 목숨마저 위태로울 것입니다. 그는 군부 내 장쩌민 세력을 한층 더 주시하고 약화시키려는 것 같습니다.”

일찍 해외 언론도 보도한바, 3월 15일 무장경찰 수십 명이 베이징 301 병원에서 쉬차이허우를 연행해 갔다. 그의 아내, 딸과 비서도 함께 연행되었다.

6월 30일, 중국 신화망은 쉬차이허우의 갑작스러운 당적 박탈을 정상으로 해석했다. 2014년 3월 15일, 중공이 쉬차이허우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고 이미 밝힌 바 있음을 근거로 삼았다.

홍콩 ‘전초(前哨)’ 잡지 7월호는 쉬차이허우 처벌의 공식 발표에 앞서, 전 중공 군사위 부주석 쉬차이허우가 숙청당했다면서 소문에 따르면 주된 이유는 탐오부패가 아니라 시진핑의 금기 두 개를 범했기 때문이라고 흘렸다. 쉬차이허우는 중공 전 충칭시위서기 보시라이 정변 사건에 연루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중공 전 정법위서기 저우융캉과도 관계가 밀접하다, 쉬는 군의 총구를 장악하고 저우는 정법의 칼자루를 장악하여 이른바 안정유지를 위해 긴밀히 협력하였다. 이후 사업 관계, 개인 사교로 발전하였고 이익의 교류가 빈번해졌다.

보도를 따르면, 시진핑은 중공 당정 대권을 장악한 후, 두 부류의 사람을 정돈해왔다. 하나는 정권 획득을 방해했던 자이고 하나는 그의 통치를 방해하는 자이다. 쉬차이허우는 여기에 속했을 것이다.

쉬차이허우는 중공군이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하고 생체 장기 적출을 감행한 주요 책임자 중 하나다. 군대를 동원하여 비밀리에 이식 장기 생체 창고(살아있는 수감자들)의 구축을 지원하고 본인도 직접 장쩌민의 파룬궁 박해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였다고 한다. ‘미국의 소리’는 일찍이 쉬차이허우는 ‘장쩌민이 군대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베이징 민간 학자 장리판(章立凡)은 홍콩 ‘경제일보’ 취재에서, ‘중공군의 부패는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한다, 쉬차이허우라는 나무는 크고 뿌리가 깊으며, 연관되는 면이 넓다. 시진핑은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모든 사람의 치즈를 건드렸다. 그는 반드시 계속해서 전진해야만 한다.’면서 “권력 투쟁이 오늘에 이르렀는데 상대를 철저히 무너뜨리지 않는다면 자신이 오히려 무너질 것이므로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단언했다.

왜 쉬차이허우가 저우융캉보다 먼저 공개되게 됐는가에 대해서 어떤 평론은 저우융캉 사건이 쉬차이허우 사건보다 더욱 복잡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타이완 행정원 대륙 위원회 부 주임 위원이며, 중공 정치 상황을 장기 연구한 학자 린중빈(林中斌)은 ‘중앙사(中央社)’에 밝혔다. ‘전 중공 당 총서기 장쩌민이 발탁한 쉬차이허우는 중국 30여 년 역사 동안 군에서 낙마한 최고위급이다. 이 일은 시진핑의 호랑이 사냥이 정말임을 보여주었다.’ 린중빈은 이어서 “(전 중공 중앙 정치국 상무위원)저우융캉도 조만간에 처리될 것이다” 다만 중앙 규율 위원회가 “아직도 자료 수집”을 마치지 못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NTD 뉴스 주즈산(朱智善)、궁순줴(公孫覺)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