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ntdtv.co.kr 2014-06-09 08:40 AM]
자오페이(趙培):
대학입시 시험이 끝나고 브라질 월드컵이 시작되었습니다. 고3 남학생들은 정말로 경사가 겹치는 순간입니다. 우리도 축구에 관해 이야기해 보죠. 중국 정부가 스포츠를 중시하는 원인은 `스포츠`를 이용해서 사회 혼란을 감추고 태평을 위장하여 `통일전선(統戰)”을 구축하기 위해서입니다. 당국이 스포츠 분야에서 전적으로 운영하는 전술은 `인해전술”입니다. 국가, 성, 시에 스포츠 전문팀을 만들고 국가의 돈으로 탁구, 농구, 축구, 배구, 체조 등 스포츠 놀이를 합니다. 제가 스포츠 `놀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국제사회에서는 모두 아마추어가 하는 것을 놀이(play)라고 부르기 때문입니다.
중공은 `인해전술”을 이용하여 수십만 명 중에서 최고의 인재 한두 명을 뽑아 외국의 아마추어 선수들과 싸우는데 이길 확률이 자연히 좀 높습니다. 그런데 중국은 유독 축구에서는 일사천리(一瀉千裏)입니다, 아시아 일류로부터 아시아 삼류로 떨어진 다음 캄보디아마저 빠르게 따라잡아 같은 수준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과정을 살펴보기로 합시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과 일본이 아시아 지역에서 자동으로 본선에 진출했기 때문에, 중국은 자연히 동아시아에서 라이벌이 없었습니다. 당시 장쩌민은 중국이 어렵게 본선에 올랐으니 어디 한번 가서 놀아보자고 결정하고 그의 정부(情婦) 쑹주잉(宋祖英)을 한국개막식에 보내 `좋은 날(好日子)”을 부르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좋지 않은 징조였습니다.
첫 번째 시합은 중국 대 브라질이었습니다. 중국의 축구팬들은 모두 TV 앞을 지키면서 한결같이 기적적 무승부를 기원했지만, 결과는 누구도 예상치 못하게 전반전 3:0 패배로 나왔습니다. 후반전에는 브라질의 주력이 휴식을 위해 경기에서 빠졌고 브라질 팀은 장난하기 시작했는데 또 한 골이 들어갔습니다. 월드컵 내내 중국팀은 단 한 골도 넣지 못했습니다. `좋은 날’은 어디로 갔을까요?
2004년 아시안 컵이 중국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이때 중국 팀은 지난 10년 이래 최강팀으로 평가되었고, 더욱 경사스럽게도 중국이 10년 동안 두려워하던 한국 팀이 이란에 패배했습니다. 모든 국민이 은근히 좋아했고 이번에는 챔피언을 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결과는 단지 생각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결승전에서 중국은 일본팀에게 1:3으로 패배했습니다.
이때부터 중국 축구는 설사약을 먹은 것 같았습니다. 중국 축구팀은 아시아 일류로부터 이류, 현재는 삼류까지 내려가서 월드컵 본선은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축구팬들 사이에는 한 가지 우스운 말이 돌았습니다. ‘하나님이 중국 축구팬들에게 소망을 들어주겠다고 하자, 축구팬들은 지구의 평화를 요구한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너무 어렵다고 대답하자 축구팬들은 그럼 중국팀이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것보다는 지구평화의 방법을 연구하는 편이 낫겠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2007년 아시안 컵에서 중국 팀은 처음으로 아시안 컵 결승 토너먼트에 진출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사담 후세인을 잃은 이라크 팀이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2011년 아시안 컵에서 중국 팀은 제3조로 선정되었지만, 또 결승 토너먼트에 진출 못 해 철저히 아시아의 삼류가 되었습니다.
중국축구의 비참한 역사는 사실 너무 많습니다. ‘공한증(恐韓症)’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2012년 원정경기에서 0:8로 브라질에 패배하고 2013년 홈 경기에서 1:5로 태국에 패배했습니다.
중국축구가 발전하지 못하는 원인은 무엇 때문일까요? 축구장에서 11명이 필사적으로 싸우는 것은 기술이고 전술입니다. 떼로 몰려 행패를 부리는 ‘인해전술’은 쓸모가 없고 행패를 부리면 오히려 레드카드를 받습니다. 축구계에 연줄을 대어 뒷문으로 들어간다든지, 부정 판정과 뇌물 수수를 한다든지 하는 모습은 중국사회의 축소판이며 중공의 당(黨) 문화가 그 원천입니다. 중국축구가 힘차게 발전하려면 축구협회나 코치를 바꾸고 개혁하는 것으로는 안 되며 이라크의 ‘중공(中共)’ 말살을 배우고, 문화를 바꿔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