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ntdtv.co.kr 2014-03-11 12:23 AM / NTD 기자 탕인(唐音)]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은 양회에서 “국유자산을 통해 폭리를 도모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국민들은 태자당과 관 2대(官二代)가 초래한 국유자산 유실(流失)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10일, NTD 기자는 캐나다에 거주하는 전 닝보(寧波) 공과대학원(工程學院) 교수인 장신위(張新宇) 교수를 찾았다. 장신위 교수는 오랫동안 중공 고관과 그 일가가 각종 수단으로 국유자산을 점유한 역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알려진 정보에 따르면 중국에서 가장 강력한 국유기업은 중국석유천연가스(CNPC,中石油, PetroChina), 중국석유화공(Sinopec,中石化),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中海油), 중국전신(CHINA Telecom,中國電信), 중국건축(中國建築) 등이다.
이 중 전 중공 정치국 상무위원 저우융캉 일가가 장기간 장악했던 기업은 중국석유천연가스와 중국석유화공이며, 전 중공 국가부주석 쩡칭훙(曾慶紅) 일가가 장악했던 기업은 중국해양석유총공사이다.
전 중공 총서기 장쩌민의 아들 장몐헝(江綿恒)은 ‘통신대왕(電信大王)’이라 불리면서 중국 통신업계의 절반을 장악하고 있다.
기자 : 중국 정부는 언제부터 국유자산 점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습니까?
장신위 : 덩샤오핑의 ‘개혁개방’부터입니다. 그들은 집단적으로 이런 개념을 수단으로, 중국의 재산을 병탄하고자 했습니다.
그 이전의 토지개혁에서 토지는 공공에 귀속되었고 공유가 된 이후에도 재산은 온전히 국민의 것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어떻게든 방법을 강구하여 공유재산을 그들의 후대에게 장악시킬 예정이었습니다. 그래서 덩샤오핑은 ‘그래도 우리의 후대는 믿음직스럽다’라고 말했습니다.
기자 : 가장 처음에 사용한 수단이 무엇입니까?
장신위 : 80년대, 주로 사용된 것은 공산당 내부에서 발명한 수단인 ‘비문(批文)’입니다. 계획경제 아닙니까. 무엇을 수출하고 무엇을 수입할 때면 반드시 공산당 간부나 영도자가 비준을 내려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비문입니다.
이 비문은 일종의 권력이라서 이것을 이용해서 제 1대 태자당이 성장했습니다.
그 이후에 부패가 등장하고 ‘6.4’가 등장합니다. ‘6.4’ 탄압 이후 사람들은 모든 이상을 상실했고 그들 후대의 마음은 부(財富)를 향해 돌아섰습니다.
기자 : 90년대 초기, 그들이 국유자산을 점유한 주요 방법은 무엇이었습니까?
장신위 : 92년 전후로 주식이 도입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공산당은 증시 정보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내 기억으로는, 내 친구 중 한 명이 광둥 군구 문화부 부장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주식 트레이더였습니다. 그의 친구들은 그를 따라 했습니다. 그가 베이징으로부터 소식을 입수하여 어떤 주식을 사면, 사람들은 뒤따라 그 주식을 사면서 빠르게 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주식은 내부 소식을 이용하여 그들 ‘옌안자녀(延安兒女)’에게 계속 돈을 벌어 주었습니다.
기자 : 이 관리의 자제들이 주식으로 큰돈을 버는 동안 수많은 일반 국민들은 주식에 돈이 묶이거나 심지어 파산하여 자살하는 일도 있었는데요.
90년대 이후, 중국은 소위 국영기업의 사유화를 시작했습니다. 이 단계에서 그들은 어떤 방법을 썼습니까?
장신위 : 중국에 국영기업이 몇 개 있나요? 국영기업의 수는 정말 많았지만 모두 사유화되었습니다. 당시에 유행하던 한마디는 ‘좌다팡샤오(抓大放小,대기업은 잘 관리하고 중소기업은 느슨하게 관리한다)였습니다. 이로 인해 소규모 국영기업은 모두 사유화되었습니다.
이런 움직임 속에서 성 위원회의 앞마당에서 놀던 아이들은 모두 기회를 잡았습니다.
가격이 얼마로 정해지건 그것은 모두 영도자가 임의로 정한 가격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정한 가격에 그들의 자녀가 매수합니다. 이 자녀들은 어떤 때는 지방 관리 혹은 재력가들과 짜고 남을 속이기도 합니다.
기자 : 많은 국민은 이런 과정이 ‘관 2대’가 억만장자로 변하는 과정이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후 중공은 어떤 방법으로 국유자산 점유를 계속했습니까?
장신위 : 이어서 나온 방법이 투자유치입니다. 이 투자유치는 표면적으로는 은행대출 정책을 내세웠습니다. 이 은행대출이 큰 문제입니다.
태자당들은 관계가 있는 모든 곳에서 대출을 받으면서 ‘경제가 발전해야 한다.’, ‘이 분야가 발전해야 한다.’ 등등의 핑계를 내세우고 한 번에 수천만 내지 1억 위안 이상을 대출받았습니다.
그러나 90년대 말이 오자 이 한차례 대출 러시는 ‘대출은 있고 상환은 없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결국 주룽지(朱鎔基) 총리가 이 미상환 채무 전부를 단번에 중앙은행으로 전이시켰습니다.
기자 : 현재 중국인이 받는 최대 압력은 주택구입입니다. 하지만 공산당 관리들이 중간에서 국유자산을 점유한 것이 아닌지요?
장신위 : 주택제도개혁(房改)이 그렇습니다. 당시 주택 분배도 영도자가 한 것이었습니다.
주택제도 개혁 이전에 그들은 먼저 주택을 충분히 분배받았습니다. 그들의 후손이 큰 주택, 좋은 주택을 모두 분배받고 난 이후, 그들은 이 정책을 내었습니다. 주택제도를 개혁한 것입니다.
기자 : 지금까지 선생님은 중공이 각 역사단계에서 국유자산을 착복한 과정을 상세히 말씀해 주셨는데요, 이 과정 중에서 발견되는 공통적 특징이 있다면 무엇일는지요?
장신위 : 공산당은 이 세계의 대세가 민주화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조류는 호호탕탕하여 거스르는 자는 망하고 순응하는 자는 융성합니다. 그러므로 당은 사유화를 알면서도 입으로는 ‘우리는 공유제다’, ‘우리는 사회주의다’라고 떠듭니다.
당은 각종 방법을 고안하여 사유화 과정을 진행시키고 있습니다. 공산당이라는 이 건달패는 사람들을 함정에 빠뜨리고, 속이고, 빼앗고, 기만하며 거대한 국가적 사회적 재부를 전부 자신들의 후손에게 사유화시키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과정입니다.
기자 : 그들의 이런 작태는 전 중국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장신위 : 이런 방법을 써서 이 민족 개개인 모두에게 행하는 짓은 극히 불공정하고 극히 부도덕합니다! 동일한 재산도 분배를 불공정하게 하고 똑같은 사건이 벌어져도 처우에 차별을 둡니다.
기자 : 현재의 집권자가 발언한 ‘국유자산을 통해 폭리를 도모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이런 문제에 변화를 줄 수 있다고 보십니까?
장신위 : ‘세치 두께의 얼음은 하루에 생긴 것이 아닙니다.’ 현재 국가는 이미 ‘병이 고황에 든 격’입니다. 어떤 사람은 국가를 구하려 들기도 하겠지만, 살아나기는 힘듭니다. 방법이 없습니다. 하루하루를 연명하기 바쁩니다.
현재 은행대출은 ‘빌리기만 하고 갚지는 않는 격’입니다. 그 때문에 은행이 ‘돈 가뭄’에 허덕입니다. 경제 발전은 없고 국가 전체가 난리입니다. 이렇게 하면 그들 공산당도 다치게 마련입니다.
만일 그들의 정권에 손상이 오면 그들은 조금은 절제할 것입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말하면, 이 관 2대는 당연히 당신이 국가라는 큰 배의 일에 관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