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ntdtv.co.kr 2013-08-22 06:38 PM]
보시라이의 배경과 정치 생애를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올해 64세인 보시라이는 중국공산당 원로 보이보(薄一波)의 아들입니다.
보시라이는 전처 리단위(李丹宇) 사이에 아들 리왕즈(李望知)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혼을 하지 않은 채 리단위 올케의 여동생 구카이라이(谷開來)와 몰래 재혼한 후 차남 보과과(薄瓜瓜)를 낳았습니다.
80년대에 관직에 오른 보시라이는 다롄(大連) 시장 재직 시절 자신을 홍보하기 위해 대량의 건설공사를 벌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랴오닝 서기 원스전(聞世震)에게 “도시는 유럽 같고 시골은 아프리카 같다”는 혹평을 받았습니다.
보시라이는 상무부장 시절, 이리선(蟻力神)사 대표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각종 특혜를 제공했습니다. 개미로 만든 정력제라며 자사의 건강식품을 크게 홍보했던 이리선은 이후 고의적으로 파산했고, 이에 속은 수십만 투자자들이 투자금을 모두 날렸으며 수많은 사람이 자살했습니다.
2007년 충칭(重慶)으로 전근된 후, 즉시 문화혁명 복제판인 ‘공산당을 노래하고 폭력조직을 척결한다’는 ‘창홍타흑(唱紅打黑)’ 운동을 벌였습니다. 이후 보시라이와 그의 심복 왕리쥔(王立軍)은 충칭에서 폭력조직을 척결한다는 구실로 무고한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때리고 고문해 큰 비난을 받았습니다.
리좡(李莊) 전 변호사는 “폭력조직 척결 운동을 벌이며 불법적으로 몰수한 재산이 수천 억 위안에 달하지만 국고에 들어간 것은 겨우 9억3천만 위안”이라는 사실을 폭로하기도 했습니다.
[리좡, 베이징 변호사]
“충칭 재정국의 익명의 공무원이 자신들이 9억3천만 위안을 받았다고 제게 알려줬습니다. 그런데 이 깡패 두목에게 3백억을 압수했다, 저 깡패 두목에게서 900억을 압수했다고 했는데, 나머지 돈은 어디로 갔을까요?”
보시라이의 실체가 전면적으로 폭로되기 시작한 것은 2012년 세계를 놀라게 한 ‘왕리쥔 사건’부터입니다.
지난 해 8월 중국공산당 관영언론은 “보시라이와 왕리쥔이 반목하게 된 이유는 구카이라이가 영국인 사업가 닐 헤이우드를 독살했다는 증거를 왕리쥔이 수집했기 때문”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청두(成都)시 인민검찰원]
“피고 왕리쥔은 충칭시 공안국 직원에게 구카이라이의 살인혐의 사건에 대한 서류를 복원, 조사하고 증거를 보충, 보존할 것을 요구했다. 아울러 국가 관련 부서에 구카이라이의 고의살인 혐의를 반영하고 또 관련 증거를 제공했다.”
왕리쥔은 이 때문에 분노한 보시라이에게 따귀를 맞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보시라이의 잔혹한 성격을 잘 알고 있던 왕리쥔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 해 2월 6일 변장을 하고 청두시 주재 미국영사관으로 도망쳤고, 이후 미국에 관련 자료를 넘겼습니다.
그러나 한 달 후, 보시라이는 중국공산당 연례 인민대표대회에 참석했고, 심지어 기자회견에서 가족 비리 문제에 대해 언론에 반박하기도 했습니다.
양회가 끝난 이튿날인 3월 15일, 보시라이는 충칭시 서기 직무에서 해임됐습니다. 4월 10일에는 중앙위원과 정치국위원 직무를 해임당하고 9월 28일에는 당적과 공직을 박탈하는 쌍개 처분을 받았습니다.
보시라이의 실각을 계기로 수년 동안 은폐됐던 그의 부패, 성추문, 암살, 심지어 반인륜죄 등 중범죄가 폭로됐습니다.
일본의 2대 신문인 ‘아사히신문’ 보도에 따르면, 보시라이 가족은 친구 명의로 미국과 영국 은행에 계좌를 개설해 60억 달러를 보관했습니다. 이미 암살을 당한 닐 헤이우드가 계좌를 개설하고 자금을 관리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영국 ‘선데이타임즈’는 보시라이가 또 백여 명의 여성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전 정치법률위원회(정법위) 서기 저우융캉(周永康)에게 뇌물로 여성들을 제공했다고 폭로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심각한 범죄는 그가 재임 기간 장쩌민의 파룬궁 탄압을 적극 지원했다는 점입니다. 그는 다롄 시장 재직 당시 현지 감옥에서 최초로 파룬궁 수련생의 생체에서 장기를 적출했습니다. 이 사실은 한 익명의 경찰이 보시라이가 통치하던 랴오닝성에서 명령을 받고 파룬궁 수련생 생체에서 장기를 적출한 적이 있다고 국제조사기구에 증언하면서 알려졌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보시라이는 중국 최고위층에 진입하려는 야심을 품고 있었습니다. 장쩌민 전 중국공산당 총서기는 일찍이 보이보에게 은혜를 입은 적이 있어 줄곧 보시라이를 강력히 지지했다고 합니다.
장쩌민이 실각한 후 정법위 서기 저우융캉은 보시라이의 가장 믿을만한 측근이 됐습니다.
지난 해 18대 당대회 이후 저우융캉의 여러 심복들이 잇달아 낙마했고 그의 비리와 스캔들이 최근에도 빈번히 해외 언론에 폭로됐습니다.
이번 세기적인 대사건의 다음 막은 어떻게 전개될까요? 지금 막 막이 열리고 있습니다.
NTD 뉴스 린란(林瀾)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