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화인 배제 사건 15주년, 中 웨이보가 분주한 이유는…(한,중,일)

[www.ntdtv.com 2013-05-17 08:36 AM]

5월 16일은 1998년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화인 배제 폭동 15주년입니다. 중국인 웨이보에서는 당시 폭동 사진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습니다.

1998년 5월, 인도네시아에서 중국인 배척 폭동으로 화인이 조직적으로 학살당했습니다. 불완전한 통계로는, 1만 명에 달하는 중국인이 사상하고 약 1만 명의 중국인 여성이 강간당했습니다. 무서운 것은 인도네시아 정부가 이를 묵인한 것입니다.

미국 미디어가 솔선하여 미국의 화인이 이러한 심각한 박해를 항의하는 시위를 보도했습니다. 인도네시아 주재 미국 영사관은 화인의 난민 신청을 받아, 중화민국은 5대의 군용 운송기가 명령을 기다리고 있으며, 해군은 인도네시아 발리 수역에서 중국인을 귀국시킬 준비를 했습니다. 중화민국 외교부는 주중 인도네시아 대표에 가장 엄중한 항의를 했습니다.

이때 중공은 “인도네시아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외무 장관이 불안과 관심을 나타냈을 뿐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들었습니다. “그때, 중공은 어떻게 하고 있었는가?” 대답은 “힘을 다하여 국민에게 알리지 않았다.”입니다. 보도도 없었고 데모도 할 수 없고, 항의도 없었습니다. 가장 슬픈 것은 중공 대사관의 화인에 대한 차가운 태도였습니다. 화인들은 결국 “미국의 끄나풀이 되어도 중국인은 되지 않겠다.”는 구호를 내걸었습니다.

후에 중공의 ‘고모우 당’은 당시 중공이 화인을 귀국시켰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자료를 모두 찾아보면 중화민국 여권 소유자와 화인은 귀국하는 배를 타지 않았습니다. 중공이 귀국시킨 것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여행 중이던 고관뿐이었을까?

중공은 1998년 이후에도 인도네시아 재정 지원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중국의 개발은행만으로 인도네시아에 이미 70억 달러 대출했습니다. 1999년부터 중공은 인도네시아와 우호 협력을 시작해 지금도 전략적 파트너 관계에 있습니다. 중국인의 정부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분명히 인도네시아 정부입니다. 이것이 웨이보에서 ‘인도네시아 화인 배척 사건’ 15 주년을 봉쇄하는 원인입니다.

인도네시아가 화인을 배척하기 시작한 계기는 중공이 인도네시아 내정에 간섭했기 때문입니다. 냉전시기 중공은 인도네시아 정부의 공산화를 지지했습니다. 당시 중공이 수출한 연필은 중국 공산주의 슬로건이 적혀있었습니다. ‘전 세계를 해방한다.’ ‘문화 대혁명 만세’ 등입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모두 중공의 테러리스트 양성을 두려워했습니다. 예를 들면 일본 적군파와 말레이시아 공산당 등 공산주의 테러리스트입니다.

수하르토는 정권을 장악함과 동시에 화인 제거를 시작하고 중국과 인도네시아의 이중 국적을 폐지했습니다. 따라서 많은 화교가 중국으로 돌아왔지만, 중공은 그들을 간첩으로 처리하고 많은 귀국 화인이 비판과 투쟁을 받았습니다. 1998년 중공이 “인도네시아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완전히 거짓말입니다.

침통한 기념일을 우리가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권 중국입니다. 경제 정책은 둘째 문제고 인권이 건국이념이어야 합니다. 어떤 집권자를 신뢰할 수 있을까요? 신앙의 자유, 언론의 자유,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고 사유재산의 침해를 막아주는 사람입니다.

NTD뉴스입니다.

일본어원문링크 : http://www.ntdtv.jp/news/69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