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빈곤 지역을 찾아가 찍은 결혼식 영상이 폭발적 조회수를 기록한 가운데, 촬영자가 경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정부 이미지를 훼손했다”는 이유에서다.
지난달 24일 짧은 동영상을 공유하는 앱 ‘더우인'(틱톡 중국판)에는 중국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 중 하나인 쓰촨성 량산 이족자치구의 한 마을 결혼식 동영상이 올라왔다. 이 영상은 수천만회 이상 조회되며 중국인들의 큰 관심을 받았다.
영상에는 갓 결혼을 마친 소수민족 부부의 신혼집 모습이 담겨 있었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집안은 가구라고 부를 만한 것이 거의 보이질 않았다. 흙바닥에는 종이 부스러기 등이 굴러다녔고 사람들은 신을 신고 집안을 오갔다.
결혼식 하객들은 땅바닥에 앉아 식사를 했다. 잔치음식은 소박했다. 두부와 배추를 넣고 끓인 국과 속없는 찐빵이 전부였다. 그런데도 한 마을 주민은 카메라를 든 촬영자를 향해 “이 집은 마을에서 가장 훌륭한 집”이라고 설명했다.
민요가락 같은 배경음악이 깔렸고, 주민들의 소탈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줬다. 까무잡잡하게 탄 주민들은 가진 것 없는 삶이지만, 밝게 웃으며 외지에서 온 이방인에게 친절을 베풀었다. 한 남성은 촬영자에게 “사양 말라”며 계속 음식을 권했다. 영상에서는 시종일관 긍정적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러나 영상을 올리고 3주 뒤인 6월 7일, 촬영자인 천젠(陈建)은 중국 인터넷 감독관의 전화를 받아야 했다. 이어 지역 공산당 위원회 서기, 공안부, 선전부 등에서 “이야기 좀 하자”는 전화가 걸려왔다. 천젠은 “면담 당했다”며 자조적으로 이 사실을 알렸다.
그는 이후 공안부에 “긍정적인 내용을 방송하겠다”는 각서를 쓴 뒤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현재 그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있던 영상들은 모두 삭제됐다. 중국 네티즌이 메신저 등으로 퍼 나른 영상들도 모두 표시되지 않는다.
다만, 해외 네티즌들이 중국에서 접속이 차단된 유튜브로 대피시켜 놓은 영상만 볼 수 있는 실정이다.
이 영상은 소수민족의 삶을 꾸밈없이 담아냈다. 정부 비판을 위한 의도로 촬영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영향력 있는 영상이 됐다는 게 중화권 전문가들의 견해다.
중국 당국은 2015년부터 ‘빈곤 퇴치’ 정책을 펼쳐왔다. 관영언론은 2020년 11월 “전국 832개 빈곤 지역이 모두 빈곤 상태를 벗어났다”며 “탈빈곤 전면 달성”을 선언했다.
그러나 이에 의문을 품고 빈곤 지역 취재를 시도하려던 외국인 기자들은 지방당국과 경찰의 제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중국 검색엔진에서 ‘량산’이나 ‘빈곤’ 같은 단어로 검색하면 나오는 결과들은 소수민족들의 부유하고 화려한 모습을 전한 관영매체 게시물이 대부분이다. RFA는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서 부유한 사회를 전면 달성하는 방식”이라고 꼬집었다.
익명을 요구한 량산 이족 자치구 소식통은 에포크타임스에 “정부가 빈곤 퇴치 정책을 시작한 이후, 오히려 사람들이 더 가난해졌다”며 “쌀밥 보는 일이 1년에 몇 번이다. 아이들은 목욕이란 걸 모르고 자란다. 화장지 없이 사는 집도 많다”고 말했다.
중국 온라인에서 ‘톈요우'(天佑)라는 필명으로 량산 이족 자치구에 관한 글을 자주 올리는 한 작가는 지난 9일 자신의 웨이보에 “중국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량산 이족 자치구는 지식인과 중산층이 소멸하고 문화와 신앙이 상실됐고 그 자리에는 마약 중독과 절도, 에이즈가 만연해 있다”고 밝혔다.
그는 “원래 이 지역은 산림자원과 광물자원이 풍부하지만, 정부는 현지 주민들의 개발을 불허하고 다른 지역에서 들어온 한족에게만 허가를 내주고 있다”며 “이족이 가난한 진짜 이유는 풍습이나 민족성 때문이 아니라 권리를 빼앗겼기 때문”이라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빈곤 퇴치를 위한 해결책은 이 땅에 있던 자원과 그 개발 권리를 지역 주민들에게 돌려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국에서는 정부나 공산당 간부들에게 빼앗긴 주민들의 권리를 되찾아주려는 ‘권리회복운동’을 펼치는 시민 활동가들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