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 전 베이징 톈안먼에서는 중국 공산당이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학생, 고등학생, 시민들을 무력 진압했다.
유족들은 매년 6월 4일 중국 공산당의 감시에도 젊음과 희망으로 생기발랄했던 학생들을 추모하기 위해 묘소를 찾는다.
톈안먼 학살 피해자 유족인 돤촹치(段昌琦) 씨는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며 “설마 정부가 국민에게 총까지 쏘겠냐던 동생은 지금 차가운 땅속에 누워 있다. 우리는 지금 이렇게 밝은 태양 아래 멀쩡히 서 있는데 말이다”라고 참담한 소감을 전했다.
돤씨의 동생 돤촹룽(昌昌的)씨는 1989년 6월 4일 계엄부대와 대치 중 시민들을 진정시키다가 인민해방군의 총에 맞아 숨졌다. 당시 나이는 꽃다운 24세였다.
그의 어머니 저우수좡(周淑莊)은 33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아들을 살해된 진상 추적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저우 씨뿐만이 아니다. 톈안먼 학살 희생자들의 어머니 모임인 ‘톈안먼 어머니’ 소속 많은 어머니들이 마찬가지다.
지난 4일 ‘톈안먼 어머니’ 대표 장쉔링(張先等)씨 등 회원 5명은 베이징시 외곽에 있는 완안(萬安) 공동묘지를 찾았다. 지난 33년간 당국의 방해와 감시, 탄압을 견뎌온 유족들은 이제 돌아올 수 없는 아들, 딸들을 기리며 또 한 번 추모사를 낭독했다.
홍콩에서도 매년 이날 빅토리아 파크에 모여 촛불집회를 열었지만, 재작년과 작년에는 중국 공산당의 ‘홍콩 국가안전법’ 제정과 중공 바이러스(코로나19) 사태 등을 이유로 이마저도 끊겼다.
하지만, 홍콩 시민들은 시내 곳곳에서 촛불을 켜며 희생자들의 용기와 희망, 공산당의 잔악한 탄압을 잊기 않을 것을 다짐했다. 지난해 한 시민은 “우리 손에 쥔 촛불을 꺼뜨릴 순 있어도 양식 있는 사람들의 마음 속 촛불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돤씨는 NTD와 온라인 인터뷰에서 “가족들의 희생자에 대한 사랑은 시간이 흐른다고 흐려지지 않는다. 우리는 진상 규명, 손해 배상, 책임자 문책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그녀는 “‘6·4’는 중국에서 톈안먼을 연상시킨다며 금지된 숫자다. 하지만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죽은 형, 누나, 동생, 동창, 자녀들을 추모하고 있다”고 했다.
올해 중국 네티즌들은 당국의 삼엄한 검열 속에서도 ‘자전거’를 통해 톈안먼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자전거’는 1989년 당시 붉은색 머리띠를 매고 자전거를 탄 채 톈안먼 광장으로 향하던 한 대학생을 상징한다.
이 청년은 ‘어디 가냐’는 질문에 “시위하러 간다. 톈안먼 광장에”라고 답한 장면이 영상으로 촬영돼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그는 ‘왜 가냐’는 질문에 “나의 의무이기 때문”라고 답했다.
이후 ‘나의 의무이기 때문’라는 말은 톈안먼 민주화 시위 혹은 중국 공산당에 대한 항거를 나타내는 하나의 슬로건으로 남았다.
한편 지난 2일 해외 반(反)공산당 매체 ‘차이나 디지털 타임스’는 선전, 샤먼 등 중국 주요 도시에 톈안먼 기념일을 앞두고 인터넷 감시와 차단을 강화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중국 당국은 모든 게임 커뮤니티에서 촛불, 탱크, 6·4를 조합해 만든 이미지나 이모티콘이 있는지 철저히 검열하도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