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전쟁이 격화하던 시기에 줄곧 반미 영화만 틀어대던 중국 관영 방송이 미국과의 정상회담 확정 소식에 미국인과 중국인의 로맨스를 다룬 영화를 갑작스레 내보냈다.
20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중국 관영 방송인 중국중앙(CC)TV의 영화채널인 CCTV 6은 전날 오전 1999년 제작된 영화 ‘황허줴롄(黃河絶戀)’을 갑작스럽게 방영했다.
황허줴롄은 중일전쟁 시기를 배경으로 만리장성 인근에 불시착한 미군 비행사와 중국 여군의 사랑을 그린 영화다. 중국 유명 배우 닝징과 미국 배우 폴 커시가 주연을 맡았으며, 중국에서 많은 상을 받았다.
당초 방영 예정이었던 코미디 영화가 느닷없이 취소되고, 황훠줴롄을 방영한 데 대해 CCTV 6은 별다른 설명을 내놓지 않은 채 “외국인의 시각에서 중국인의 불굴 정신을 다뤘다”고만 밝혔다.
하지만 이를 놓고 CCTV가 내주 미·중 정상회담의 확정에 부응해 방송 일정을 바꾼 것이라는 해석이 주류를 이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18일 전화 통화에서 이달 말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때 미·중 정상회담을 하기로 합의했다.
CCTV의 ‘변심’에 중국 온라인에서는 “하룻밤 새 이렇게 달라진 모습을 보일 수 있느냐”며 냉소적인 반응이 나온다.
사실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이 2천억 달러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25% 관세 부과를 발표할 때만 해도 CCTV는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을 다룬 영화를 내보내며 반미 정서를 고취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중국은 6·25전쟁을 미국에 맞서 북한을 지원한 전쟁이라는 의미로 ‘항미원조 전쟁’이라고 부른다.
CCTV는 지난달 16일 ‘영웅아녀'(英雄兒女), 17일 ‘상감령'(上甘嶺), 18일 ‘기습'(奇襲)에 이어 19일에는 6·25전쟁 때 가장 치열했던 전투인 장진호 전투를 다룬 기록 영화를 내보내기도 했다.
또한, ‘아빠 데리고 유학 가다’ 등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 TV 드라마는 중국 내 방영이 갑작스럽게 취소됐으며, 중국 연예계에서 활동하던 미국 배우들은 모든 TV와 영화 출연이 전면 중단됐다.
당시 CCTV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우리는 영화와 같은 문예 작품을 통해 시대의 요구에 부응한다”며 “지금이 항미원조 시대는 아니지만, 무역전쟁 배경 아래에서 ‘항미’는 여론의 주류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랬던 CCTV가 이제 미국인과 중국인의 로맨스를 다룬 영화를 갑작스럽게 내보내자 중국 소셜미디어에서는 “이런다고 과연 미국이 알아줄까”라는 냉소적인 반응이 나온다고 홍콩 언론은 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