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들이 이를 닦지 않았다고? 천만에! 고대의 치약은 훨씬 효과가 좋았다.
옛사람들은 어떻게 치과 질환과 충치를 예방했을까? 이는 어떻게 닦았을까? 치약과 칫솔은 있었을까? 현대인으로서 무척 궁금할 것이다. 실제로 고대에도 치약이 있었으며 그 효과는 무척 좋았다.
옛사람들은 치아를 무척 중요하게 여겼고 삶의 근원이라고도 생각했다. 그래서 이가 튼튼한 사람은 건강하며 장수한다고 믿었다.
예를 들면 ‘이아(爾雅) 석고(釋詁)’에는 “치아는 수명이다”라는 말이 있으며 ‘예기(禮記)’에는 “옛사람들은 나이를 연령(年齡)이라 했는데 치아를 나이로 여긴 것이다. 즉 ‘령(齡)’은 ‘해[年]’의 별칭이다. 사람은 치아로 나이를 정하고 벼슬로 서열을 정한다. 치아를 ‘치(齒)’라고 하며 그래서 치열이라 이른 것이다”라는 내용이 실려 있다.
옛사람들은 구강 세척제와 침술로 충치를 예방했다.
예부터 중국은 치아 건강을 중시했으며 수천 년 전부터 치아 문제를 인식해 치아를 보존하고 치료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편작창공열전(扁鵲倉公列傳)’에 치과 질환에 대한 의학적 기록이 실려 있다. “제(齊)나라 관리가 충치를 앓았는데 그는 왼쪽 대양명맥(大陽明脈)에 염증이 있는 것으로 여겨 고삼탕(苦參湯)을 먹었다. 하루 3승(升 : 1승은 0.2ℓ)씩 5~6일 정도 먹었더니 오히려 병이 심해졌다. 그는 평소 입을 벌리고 자며 음식을 먹고 이를 닦지 않았다.
한(漢)나라 초기의 유명한 의사 창공(倉公)이 관심을 보였고 구강 세척제와 침술로 관리의 충치를 치료했다. 충치 원인은 풍사(風邪)이며 식사를 한 후 이를 닦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일반적으로 옛사람들은 소금물 찻물 약술 등을 사용해 입을 헹궜으며 이를 충치를 예방하는 중요한 방법으로 여겼다. ‘예기(禮記)’에 “첫닭이 울 때 대얏물로 씻는다”는 말이 있는데 ‘대얏물로 씻는다’는 것에는 양치질도 포함하고 있다. 수(隋)나라 때 소원방(巢元方)이 지은 ‘제병원후론(諸病源候論)’에는 “식사 후에는 항상 양치질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충치를 앓게 된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당(唐)나라의 중의사 손사막(孙思邈)이 지은 ‘비급천금약방(备急千金药方)’에는 “매일 입에 소금을 물고 따뜻한 물로 이를 백 번씩 문지르면 이가 단단해지고 촘촘해진다”는 내용이 있다.
명(明)나라 때 서춘보(徐春甫)가 편찬한 ‘고금의통대전(古今醫統大全)’에는 “아침 일찍 이를 닦는데 이는 순서가 틀린 것이다. 하루에 먹은 음식 찌꺼기가 치아에 남아 쌓이기 때문이다. 저녁에 이를 닦으면 치간(齒間)에 찌꺼기가 제거되어 이가 상하지 않는다. 즉 아침보다 저녁에 이를 닦는 것이 이를 튼튼하게 하는 방법이다. 현명한 사람들은 식사 후는 물론 아침 일찍 그리고 자기 전 등 총 5회 이를 닦는다. 이를 튼튼하게 하고 희게 보존하는 좋은 방법이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옛사람들은 어떻게 이를 닦았을까?
이를 닦는다는 것은 이를 깨끗이 하는 방법을 가리킨다. 당송(唐宋) 시대에 사람들은 버드나무 가지를 사용하여 이를 닦아 풍을 없애고 부종(浮腫)을 다스렸으며 통증이 멈추도록 했다. 버드나무 가지를 물고 치아 안팎을 위아래로 문질렀으며 치약도 사용했다.
아분(牙粉)으로 치아를 닦아 깨끗이 했다.
고대에 사용하던 아분(牙紛 : 가루 치약)은 이를 깨끗이 하는 동시에 치료제 역할도 했다. ‘보제방(普濟方)’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저아조협, 생강, 승마, 숙지황, 한련, 괴각자, 세신, 연잎 등 약재 각 두 냥(兩 : 1냥은 약 50g)에 청염을 약간 넣고 함께 달인다.
청염을 제외한 나머지 약재들은 냄새가 사라진다. 이 약을 새로 만든 단지에 넣고 입구를 단단히 막는다. 나중에 이 약을 자주 먹으면 80대까지 동안을 유지할 수 있다. 머리카락이 더 검어지며 빠졌던 이가 새로 난다.”
원(元)나라 홀사혜(忽思慧)가 지은 ‘음선정요(飲膳正要)’에는 “이른 아침 소금으로 이를 닦으면 치과 질환이 생기지 않는다”는 말이 있으며 ‘당요경험방(唐瑤經驗方)’에는 다음과 같이 치약 만드는 방법이 기록되어 있다. “청염 1근(斤 : 약 500g), 괴지(홰나무 가지) 반 근에 물 4그릇을 붓고 반 정도가 남을 때까지 끓인 다음 볶은 소금을 더한 약으로 이를 닦는다.”
고대에는 약용 치약을 사용했다.
북송(北宋) 황실 의원이었던 왕부은(王怀隐) 등이 편찬한 ‘태평골혜방(太平聖惠方)’에는 가루 치약보다 더 발전한 연고[膏] 치약을 만드는 방법이 소개되어 있다. “괴지고(槐枝膏)는 홰나무, 버드나무, 뽕나무 등을 반 근 정도씩 반 촌(寸 : 1촌은 약 3cm) 크기로 잘라 물 한 되(斗 : 약 1.8ℓ)에 넣고 1/3 정도가 될 때까지 끓인 다음 찌꺼기를 걸러내고 걸쭉해질 때까지 약한 불로 달인다. 나중에 청염 한 냥(빻은 것), 천궁(간 것), 세신을 첨가한다.”
고대 칫솔
이를 닦는 도구는 끊임없이 발전해 왔다. 처음에는 손가락으로 닦았고 나중에는 버드나무 가지를 사용했다. 송나라 때 발명한 칫솔에 대해 주수중(周守中)은 ‘양생류찬(養生類纂)’에서 “이른 아침에는 칫솔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이뿌리가 떠 있는 상태이므로 자칫하면 이가 흔들려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 말총으로 닦으면 이가 손상될 수 있다. 말총으로 만든 칫솔은 단단하므로 주의하지 않으면 피가 날 수 있다”라고 기록했다.
치과 질환은 약으로 다스릴 수 있다. 잇몸 부종은 양기를 누르고 음기를 성하게 하며 위화(胃火)를 다스려 치료한다. 표면 또는 근본을 치료하거나 때로는 둘 다 치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