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장애로 생활고를 겪던 노숙인이 동네 약사님의 도움으로 새 삶을 살게 됐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지난해 뉴스를 통해 알려진 서울 종로구 창신동 약사님의 미담이 재조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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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바로 창신동 골목 모퉁이에서 35년 동안 약국을 운영한 최윤혜 씨.
2021년 봄, 최씨는 약국 창문 너머로 분주히 움직이는 50대의 노숙인 남성을 발견했다.
이 남성은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리어카를 끌고 골목을 오가며 부지런히 폐지와 박스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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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혼자 힘으로 살아가려는 남성의 마음이 너무 예뻤고, 최씨는 그에게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었다.
남성은 55살이지만 9살 수준의 지능에 귀도 잘 안 들리는 최재만 씨였다.
서울역에서 노숙하다 창신동으로 온 재만 씨는 주소지가 용산구로 돼 있어, 창신동 주민센터에서 지원받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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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는 쪽방촌을 운영하는 사장님에게 부탁해 월세 25만 원짜리 방부터 구했고, 전입신고부터 해줬다.
재만 씨가 창신동 주민이 되자, 월세 25만원과 생필품이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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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는 재만 씨가 지원금을 받을 통장을 만드는 과정에서 그가 한 통신사 대리점에서 사기를 당한 사실을 알게 됐다.
결합상품이 13개나 가입돼 사용료가 5백만 원 넘게 밀렸는데, 경찰이 직접 고소장을 써줘 150만 원은 돌려받았다.
무엇보다 가장 큰 장애는 ‘장애인 등록’이었다.
각종 서류를 준비해서 냈지만, 국민연금공단은 선천적인 장애라는 걸 증명할 서류를 보완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재만 씨는 가족이 없어 과거 자료를 구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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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는 재만 씨에게 물어물어 일생을 직접 글로 정리했다.
재만 씨는 30살 이전의 기억은 거의 없는 데다 봉제공장과 가방공장을 전전하며 지내다 2006년, 39살쯤 신안염전에 끌려갔다.
당시 염전노예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2년 후 염전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이후 군산 등에서 일하다 2020년 2월, 서울역 등에서 노숙하다 창신동으로 들어오게 됐다.
이 자료와 함께 주민센터가 관련 자료를 보충해 제출하고서야 장애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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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등록을 하는 방법을 알아보고, 신청한 후 인정받기까지 꼬박 6개월이 걸렸다.
재만 씨처럼 장애를 가지고 있음에도 장애등록을 하지 못해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전체의 약 5%, 무려 12만 명이 넘을 걸로 추정된다.
이들은 대부분 절차와 방법을 모르고, 등록과정이 번거로워서 장애등록을 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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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담을 취재하려던 MBC 취재진에게 최씨는 “개인적인 선생으로 알려지는 건 원치 않는다”라며 이 부분을 지적했다고 한다.
보다 적극적인 행정으로 소외되는 이들이 없기를 바란다는 게 그의 부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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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신동 주민센터 관계자는 “그나마 (쪽방으로) 들어오셨기 때문에 포착이 될 수 있었다. 약사님을 안 만났으면 힘들었고. 운이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슬프지만…”이라고 말했다.
창신동에 자리 잡은 재만 씨는 손을 내밀어 준 최씨 덕분에 이제 ‘박스 사장님’이라는 별명과 함께 폐지와 신문을 챙겨주는 따뜻한 이웃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