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할 거 같아’ 이런 말 하지 마. 알았지? 나올 거 같으면 봉지를 가지고 와. 토하면서 해”
인천 부광고등학교 전교 꼴찌 엄규민. 같은 학교 전교 1등 김도윤.
1학기 기말고사 기간인 6월, 전교 꼴찌가 한 달 동안 전교 1등처럼 살아보기로 했다.
1등이 펜을 들면 펜을 들고, 1등이 책을 넘기면 책을 넘기고, 1등의 모든 행동을 따라 하기로 했다.
꼴찌 규민이는 1학년 3반 반장이었다. 운동도 잘하고, 사교성도 좋고, 리더십도 있고, 공부 빼고 다 잘했다.
수업 시간에 규민이의 얼굴을 보기란 좀처럼 어려운 일이었다. 규민이가 잠만 자기 때문. 숙제도 안 했다.
규민이는 “공부하려면 앉아서 해야 해서 딱딱하다는 느낌이 들어요”라며 공부가 싫은 이유를 밝혔다.
1등 도윤이도 1학년 1반 반장이었다. 도윤이는 “수업 시간에 졸릴 틈이 없어요. 새로운 걸 발굴해내는 시간이니까”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두 친구의 일과는?
도윤이는 아침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일어나, 7시쯤에 학교에 도착해 공부를 시작했다.
도윤이가 한창 공부하는 그 시간에 규민이가 일어났다. 8시가 넘어서 등교한 규민이는 친구들과 수다를 떨었다.
도윤이는 수학을 좋아한다며 “아무리 깊게 파놓은 함정이 있다고 해도 그 함정을 발견했을 때의 희열감이 있어요”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렇다면 규민이의 수학 시간은? 멍 때리는 시간이었다.
“이걸 어디에 써먹나.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만 하면 살 수 있는데 왜 굳이 배워야 하나”
이렇듯 극과 극의 두 학생이 한 달 동안 함께 하기로 한 첫날.
규민이는 도윤이를 따라 교실 가운데 맨 앞자리에 앉았다.
“못 자, 이제. 좋은 날 다 갔어”
“아 이거 아닌데…”
과연 두 친구는 무사히 한 달을 보낼 수 있을까.
심지어 스마트폰조차 없다는 도윤이에 규민이는 “살짝 사람이 아닌 듯한 느낌? 외국인?”이라고 반응했다.
1등을 따라 하려면 먼저 학교에 일찍 등교해야 했고, 저녁에는 자습실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공부해야 했다.
무엇보다도 수업시간에 깨어 있어야 했다. 도윤이가 계속 규민이를 깨웠다.
또 1등처럼 쉬는 시간에는 공부를 해야 했다. 규민이가 슬쩍 도망치려고 했지만, 도윤이가 붙잡아 딱 걸렸다.
“빨리 문제 풀어. 모르면 앞에 책을 찾아”
규민이는 그 어려운 수학보다 도윤이가 이해가 안 됐다.
“저랑 안 맞는 것 같아요. 처음부터 저랑 사는 세계가 다른 애…”
공부가 재밌다는 도윤이에게 규민이는 “뭔 소리 하는 거야”라고 대꾸하기도 했다.
주말에는 도윤이가 규민이네 집을 찾아 같이 공부했다. 규민이 어머니는 “같이 살았으면 좋겠어요”라고 작은 소망을 전했다.
“그대로 외워. 풀이를”
“이걸 어떻게 외워. 토 나와”
“‘토할 거 같아’ 이런 말 하지 마. 알았지? 나올 거 같으면 봉지를 가지고 와. 토하면서 해”
이런 대화를 나누던 도윤이와 규민이는 다투기도 했다.
도윤이가 매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와서 나눠먹으며 화해했다. 그 와중에도 도윤이는 “조금만 더 세게 시킬게”라고 했고, 규민이는 허탈하게 웃었다.
사실 공부는 힘들어하지만, 규민이가 잘하고 또 하고 싶어 하는 게 따로 있었다. 그림이었다.
규민이가 그린 그림을 본 도윤이는 “제가 학교 과목 중에 가장 취약한 게 미술인데”라며 무척이나 감탄했다.
규민이는 눈치를 보며 이제껏 본 것 중 제일 밝은 표정으로 웃었다.
그래도 상극은 상극이었다.
두 친구는 얼음물을 싸들고 같이 등산을 했는데, 이날 나눈 대화는 이러했다.
“물은 얼면 왜 부피가 팽창할까?”
“산에서 물 먹으면서까지 그런 얘기 해야 해?”
기말시험 일주일 전. 이번에는 규민이가 도윤이네 집에 가서 같이 공부하기로 했다.
짜장면과 탕수육을 시켜놓고, 도윤이는 먹으면서도 공부했다.
그러자 규민이가 도윤이를 따라 영어 단어장을 들었다.
“뭘 먹으면서 공부를 한다는 게 말도 안 되거든요. 도윤이가 이러고 있으니까 따라 할 수밖에 없잖아요”
마침내 기말고사 당일이 됐다. 규민이는 “시험 여기서 더 성적이 안 나올 수가 없어요. 걱정 마세요”라며 오히려 보는 사람들을 안심시켰다.
시험날 잠을 안 자는 것도, 시험문제를 제대로 읽는 것도 처음이었다. 무엇보다도 시험공부를 한 게 처음이었다.
규민이는 “제가 공부를 스스로 했다는 게 참 신기해요”라고 뿌듯해했다.
이에 도윤이는 시험이 끝나고도 앞으로도 열심히 하자고 규민이를 다독였다.
“예를 들어 자습실에 매일 밤 10시까지 남는다든지…”
“다 이상한 것만 하라 해”
그렇게 한 달 지내기가 끝났고, 다시 두 달이 지났다.
도윤이는 한결같이 모범생이었다. 그렇다면 규민이는?
규민이는 여전히 맨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수학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도 척척 했다. 수업 시간 내내 졸지 않았다.
규민이는 “저도 공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 같아요”라며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규민이와 도윤이는 친한 친구가 돼 이제는 규민이가 도윤이에게 운동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이같은 규민이와 도윤이의 우여곡절 한 달 생활은 지난 2015년 방송된 EBS 다큐멘터리 ‘꼴찌가 1등처럼 살아보기’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