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정하고, 그 밀정 때문에 돌아가신 진짜 독립운동가가 현충원 바로 옆자리에 있는 걸 보고 통탄했다…”
지난 13일 KBS1 ‘시사기획 창’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특집으로 ‘밀정 1부 배신의 기록’을 방송했다.
밀정은 일제강점기 당시 독립운동가들의 치명적인 정보를 일제에 몰래 빼돌린 내부 배신자를 말한다.
이날 KBS 탐사보도부 취재진은 독립운동 기밀 사료를 발굴해 밀정 혐의가 짙은 한국인 900여 명을 최초로 확인, 보도했다.
특히 이들 중에는 현재 독립유공자로 둔갑해 현충원에 안장된 이도 있었다.
보도에 따르면, 청산리 전투의 주역 김좌진 장군의 최측근 비서였던 이정이 바로 그 밀정.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이듬해인 1920년 만주 청산리 일대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둔 김좌진 장군은 자신의 가장 가까운 곁에 막빈, 요즘 말로는 비서 한 명을 두었다. 이름은 이정.
이정이 김좌진 장군의 최측근으로 있던 당시 일본에는 김좌진 장군을 비롯해 이장녕, 이범석 선생 등 오늘날까지도 이름이 널리 알려진 독립군 간부들의 개인별 특징이 상세히 적힌 문서가 전달됐다.
– 김좌진. 36세 총사령관. 특기는 검술, 사격, 유도, 승마. 신장 6척 1촌, 얼굴 타원형, 얼굴 희며 눈빛 예리
– 이장녕. 44세 참모장. 특기 검술, 수학. 신장 5척 3~4촌, 뻐드렁니
– 이범석. 26세 참모. 특기 검도, 수학, 측량학. 신장 5척 4~5촌, 안경 착용, 풍채가 좋음
직책은 물론, 특기, 외모까지 개인 신상정보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문서들. 문서들은 입수되자마자 곧바로 정리돼 조선 총독부를 비롯한 모든 기관에 뿌려졌다.
이에 관해 이동언 전 독립기념관 책임연구위원은 취재진에 “일제에 아주 중요한 고급 정보였을 테고, 독립운동 세력을 소탕할 수 있는, 독립운동 조직 입장에서 보면 아주 큰 타격을 입는 아주 중요한 정보가 일제 측에 밀고됐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군자금 모금 과정과 독립군의 향후 의거 계획까지 핵심 간부가 아니면 알기 힘든 내부 기밀 정보들을 과연 누가 일제에 낱낱이 밀고했을까.
문서 앞에는 이정이라는 이름이 선명히 적혀 있었다. 문서에는 이런 당부도 적혔다. “극비 내용으로 누설한 것이라 발각되면 내 목숨이 위험하니 비밀로 해달라”
1932년, 김좌진 장군과 청산리 전투를 함께 이끈 이장녕 선생이 밀정의 밀고로 일제에 붙잡혀 사망했다. 당시 이장녕 선생은 오랜만에 집에 와 있었다.
이장녕 선생의 손자인 이석희 씨는 “우리 할아버지가 밤낮 (독립운동으로) 나다니다가 집에 온 걸 어떻게 알았겠냐”며 “밀정들이 알아서 ‘와 있으니까 잡으러 와서 처치해라’ 하고 사주를 한 것”이라고 전했다.
이정은 광복 후 김좌진 장군의 측근으로 공로를 인정받아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고 독립유공자가 됐다.
현재 이정의 위패는 국립 서울 현충원에 안치돼 있다. ‘순국선열’이라는 명패까지 새겨졌다. 공교롭게도 이정이 밀고한 독립군 소속 이홍래 선생의 위패와 나란히 놓여있다.
이정의 밀고로 인해 독립군의 군자금 모금 활동을 도맡았던 독립운동가 이홍래 선생은 1924년 4월 일제에 체포됐다.
밀고자와 피해자가 나란히 독립유공자로 있는 상황. 한 명은 가짜다.
취재진은 이정의 후손으로 국가보훈처에 등록된 사람들에게 접촉을 시도했으나 모두 취재를 거부했다.
부실한 서훈 과정 심사 때문이라는 지적에 대해 국가보훈처는 어떤 자료가 맞는지 현재로서는 확인할 수 없다며 “독립유공자들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가 진행 중”이라는 원론적인 답변만 취재진에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