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던 황제의 어린 시절 탄생한 ‘이티아오룽’ 만두

By 한지민 기자

중국 난징(南京)의 명물 ‘이티아오룽’(一條龍) 만두는 톈진 ‘거우부리’와 함께 각각 남과 북을 대표하는 만두다.

이 만두의 유래는 남북조시대의 마지막 황제인 진후주(陳後主)의 유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진후주(진숙실, 陳叔寶)는 553년에 출생해 남북조시대 진조 말기인 582년에 제5대 황제로 즉위했다. 그가 589년 폐위될 때까지 당시 수도는 젠캉(建康)이었는데, 오늘날의 장쑤성 난징시이다.

‘남사·진본기(南史·陳本紀)’는 진후주를 주색에 빠져 시만 지은 방탕한 황제로 기록하고 있다.

그는 재위기간 동안 궁궐 확장 공사로 재정을 낭비했고 간신을 신임해 조정의 혼란을 가져왔다.

드라마 ‘리호우주와 자오쾅인(李后主与赵匡胤)’에서 진후주 (우치룽

400여 년간 이어온 위진 남북조시대는 수나라가 589년 중국을 통일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진후주는 그 후에도 16년 동안 향락에 빠져 살다가 604년 52세로 생을 마쳤고 ,대장군으로 추서 받아 장성양공(長城煬公)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노는 것을 좋아한 진후주는 10살 때 궁궐의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고 평상복으로 위장한 채 궐을 빠져 나왔다. 번화가인 친화이 강가로 간 그는 붐비는 인파 속에서 구경하며 궁궐에서 느낄 수 없었던 즐거움을 만끽했다.

시장기를 느낀 진후주는 어느 만둣가게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방금 찐 따끈따끈한 만두가 식욕을 자극하자, 그는 배가 찰 때까지 허겁지겁 만두를 먹어치운 뒤 그대로 떠나버렸다. 황제 아들이 만두값을 치러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

다음 날 또 같은 행동을 반복했지만 진후주의 비단옷을 보고 가게 주인은 계산을 요구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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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날에도 진후주가 다시 찾아오자, 주인은 “꼬마 손님, 저는 이 만두를 팔아 생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손님이 이틀 동안 먹은 만두는 그냥 제가 사드린 셈 치더라도 이렇게 매일 오시면 저도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옷차림을 보니 부잣집 자제분 같은데, 만두 값이야 거뜬히 내실 수 있겠죠. 이름을 알려 주시면 장부에 올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한 번도 물건을 사본 적 없는 진후주는 가게 주인의 요구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장부에 이름을 올려야 한다는 것은 이해했다. 누군가 함부로 자신의 이름을 부를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이티아오룽(一條龍)’이라는 가명을 만들어냈다.

Shutterstock 이미지, NTD 편집

얼마 후 ‘이티아오룽’이라는 아이가 황제가 될 진후주라는 소문이 돌면서 소황제가 들렀던 만두 가게 입구는 ‘용문’으로, 번화가는 ‘용문가’로 이름이 바뀌었다. 진후주가 장부에 쓴 ‘이티아오룽’이라는 글자는 액자로 만들어져 가게 한가운데에 걸렸다.

그 후 고위 관료부터 천민까지 소황제의 덕을 보려는 사람들로 만두 가게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서른 살의 나이로 황제에 오른 진후주는 어릴 적 일이 체면을 손상시킨다고 생각해 ‘헛된 소문을 퍼뜨려 임금을 농락했다’는 죄목으로 만둣가게를 문 닫아 버렸다.

하지만 ‘이티아오룽’ 만두는 더 유명해져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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