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당시 ‘원숭이 기병대’ 있었다”

By 허민 기자

정유재란 당시인 1597년, 북상하는 왜군과 명나라의 원군이 마침내 충청도 직산에서 대결했다.

“명나라의 양호(楊鎬)는 원숭이(弄猿) 기병 수백 마리를 데리고 소사하(素沙河) 다리 아래 들판이 끝나는 곳에서 매복하게 하였다. 원숭이는 말에 채찍을 가해서 적진으로 돌진하였다. 왜적들은 원숭이를 처음으로 보게 되자 사람인 듯하면서도 사람이 아닌지라 모두 의아해하고, 괴이하게 여겨 쳐다만 보았다. 혼란에 빠져 조총 하나, 화살 하나 쏴 보지도 못하고 크게 무너져 남쪽으로 달아났는데 쓰러진 시체가 들을 덮었다.”

이는 1751년 조선의 실학자 이중환(1690∼1756)이 쓴 택리지의 ‘팔도론·충청도’에 기록되어 있는 소사 전투(1597) 장면으로, 그중에서도 원숭이 기마부대의 활약상을 표현한 이 부분은 마치 판타지 영화처럼 극적이고 환상적이다.

실제로 당시 명군 사령관이던 형개(邢价)의 조선인 참모였던 김대현의 후손 집에서 명나라 군대를 환송하는 그림에 원숭이 기병대 모습이 발견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림 속에는 실제로 원병삼백(猿兵三百)이라 쓰인 깃발 아래 원숭이 모양 병사들이 뒤따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정유재란이 끝난 후 철수하는 명군들을 그린 ‘천조장사전별도’(天朝將士餞別圖) 중 원병삼백(猿兵三百)이라는 깃발 아래의 원숭이 병사들을 확대한 것(한국국학진흥원 제공)

이는 이들 원병은 원숭이를 훈련시켜 참전시킨 것이라는 설, 또는 중국에 표류한 서양인을 훈련시킨 외인부대라는 설, 적정을 살피고자 원숭이로 위장시킨 특수부대라는 설 등을 낳게 했다.

그런데 당시 ‘원숭이 기병대’가 실제로 원숭이였다는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의 논문 ‘임진왜란 소사전투의 명(明) 원군(援軍) 원숭이 기병대’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이 확인됐다.

‘천조장사전별도’(天朝將士餞別圖)’ 중 원병 부분(한국국학진흥원 제공)

임진왜란 기간 신녕현감(新寧縣監)으로 전투에 참가했던 손기양은 1598년 7월 21일 명나라의 지휘관 유정(劉綎)의 부대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유정의 군진으로부터 돌아왔는데 초원(楚猿·원숭이)과 낙타가 있다고 했다. 원숭이는 능히 적진으로 돌진할 수 있고, 낙타는 물건을 운반할 수 있다고 한다.”

임진왜란을 가장 자세하게 서술했다고 평가받는 조경남(趙慶男·1570∼1641)의 ‘난중잡록(亂中雜錄)’에서도 비슷한 묘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군사 가운데 초원(원숭이) 4마리가 있어 말을 타고 다루는 솜씨가 사람과 같았다. 몸뚱이는 큰 고양이를 닮았다.”

안 교수는 막연하게 생각해왔던 원숭이 기병대의 실체가 일부 밝혀진 셈이라며 “서구의 ‘반지의 제왕’ 같은 판타지 소설보다 더 극적이고 드라마틱한 전투가 임진왜란 당시 한반도에서 펼쳐졌다”고 밝혔다.

안 교수는 또 “이번 연구를 계기로 다양한 문화 콘텐츠에서 원숭이 부대의 활약을 활용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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